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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쿠로] Hurt me (1)

배우 스구루 X 신인배우 쿠로오



*쿠로른 배포전 샘플1(중철)


[스구쿠로] Hurt me.

배우 스구루 X 신인배우 쿠로오




<Kuroo's>


툭.

눈앞에 떨어진 것은 잃어버린 콘돔과 러브젤이었다.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더라니. 그래도 이렇게 의외의 장소에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필이면 이 재수 없는 새끼한테 들켜서. 절대 인정하는 기색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게 뭔데.”

“니 자리에 떨어져 있던 거.”

“무슨.. 내거 아니거든? 다른 사람이 떨어뜨렸겠지.”

“흐응. 그래?”

아니면 말고. 빙글빙글 웃는 얼굴에 울컥 말 못할 짜증이 솟아올랐다. 남의 방에 멋대로 들어오지를 않나. 주인 있는 침대에 허락 없이 앉지를 않나. 하나부터 열까지 민폐가 아닌 것이 없었다. 원래도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한참 중에 방해한 것은 아무래도 영향이 컸다. 잔뜩 달아올랐던 아래가 아직 화끈 거렸다.

“볼 일 다 봤으면 빨리 나가.”

들킬까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연신 잘근거렸다. 침대 위 미처 치우지 못한 핸드폰과 핸드크림이 신경 쓰여 자꾸 눈길이 갔다. 다행히 핸드폰은 화면이 엎어져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방에 냄새가 심한데.. 로션인가?”

“알 바 없잖아. 얘기 끝났으면 빨리 나가라니까.”

“로션이 아니라 이거구나.”

스구루가 덥석 뚜껑열린 핸드크림을 집어 코에 가져다 댔다. 맞네. 복숭아향.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쁜 짓을 들킨 어린 애마냥 화끈 열이 올랐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다리가 휘청 넘어질 뻔 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사람 말 좀 들어..!”

“참기 힘든 가봐. 자꾸 보채네.”

“뭐?”

“거기.”

스구루가 턱짓으로 제 아래를 가리켰다. 결국 들킨 건가 싶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표정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이 스스로도 여실히 느껴졌다.

“화장실 급한 거 아니야?”

“..어?”

“갔다 와. 아니면 뭐 다른 일인가?”

스구루는 씩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안 들켜서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어딘가 찝찝했다. 그리고 이 상태로 화장실을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는 도중에 들킬게 뻔했다. 그럼 또 하루 종일 시달림을 당할 테고, 무엇보다 자존심이 있지 적어도 스구루 앞에서 만은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뭐해. 안 가?”

“..니가 가야 가지!”

“우리 사이에 무슨 내외야.”

“우리 사이는 개뿔. 웃기고 있네.”

“가기 싫으면 여기서 하든지.”

“무슨.. 윽."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버럭 화를 내려다가 생경한 느낌에 순간 숨을 멈췄다. 잔뜩 녹은 핸드크림이 구멍에서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진짜 망했다. 고작 한 두 방울 남짓일 테지만 족히 몇 십 미리는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혹시 더 흐르기라도 할까봐 아래에 잔뜩 힘을 줬다. 설마 들켰나.

“...”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스구루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스구루는 이 곤란한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 모양이었다. 성큼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에 전보다 진한 웃음기가 걸렸다.

“흘렀네?”

목덜미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스구루의 손가락이 흐르는 크림을 따라 예민한 허벅지 뒤를 쓸어 올렸다.

 

 

1.

영화 대본을 받은 것이 고작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늘 엑스트라, 조연을 전전해오다 나름 친분이 생긴 감독님의 추천으로 오디션도 없이 주연자리에 캐스팅 됐다. 평소의 저로서는 말도 안 되게 파격적인 캐스팅이었다.

미팅자리에서 만난 감독은 처음 시나리오부터 저를 생각하고 쓴 것이라며 꼭 출연해주었으면 한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서 출연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낱 인지도 없는 무명배우가 이렇게 직접적인 주연 캐스팅을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장르는 느와르물.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도전해봤으면 하고 생각했던 장르였다. 거부할 수도, 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상대배우였다.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미팅 겸 대본 리딩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곧 현실이 됐다. 감독과의 술자리가 있고 한참 뒤인 지난주 금요일, 갑작스레 날아온 대본과 함께 또 한 명의 주연 배우가 정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달된 대본의 앞표지에는 ‘쿠로오 테츠로’라는 제 이름과 함께 ‘다이쇼 스구루’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스구루는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젊은 배우 중에 한 명이었다. 주로 영화 위주의 연기를 했는데, 어릴 때 데뷔를 해서 나이는 동갑이라도 느지막이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저보다는 한참 선배인 사람이었다. 연기 경력이 벌써 10년은 훌쩍 넘어가니 실력은 당연했고, 고정된 팬층하며, 대중의 인식, 들리는 소문으로는 방송국 내에서의 평판까지 좋은 편이었다. 스캔들 한 번 난 적이 없으니 그야말로 이상적인 배우의 표본이었다.

이런 인지도 높은 배우가 제 상대역이라니 대본을 받고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후배사이에 심각한 군기잡기가 있다거나, 실력 차가 너무 심해서 대놓고 비교 당하는 건 아닐까하고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내가 상대배우보다 더 놀란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대본의 내용이었다. 단순한 느와르물이 아니었다. 파격적인 캐스팅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대본 리딩 당일.

상대배우는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모두 첫 만남의 자리였다. 일주일간  캐스팅을 거절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감독의 전화번호를 띄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맡은 역을 분석하고 대본 리딩 준비를 하는데 열심이었다. 지극히 모순적인 일주일이었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잠을 설치고 나니 저절로 눈이 일찍 떠진 탓이었다. 회의실 한 가운데에는 테이블 세개가 나란히 붙여져 있었는데 제 자리는 맨 앞자리의 감독과는 불과 한 칸밖에 떨어져있지 않았다. 

가방에서 벌써 손때가 타기 시작한 대본을 꺼내 휙휙 장을 넘겼다. 역시 문제의 씬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슥 훑어본 것만으로도 위험경고가 쓰인 빨간 별표들이 수두룩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이건 정말 사기였다. 이게 어디를 봐서 느와르물이라는 말인가. 자고로 범죄영화라 하면 분위기 있는 슈트라던지, 총, 각종 액션씬 그리고 음모가 판을 치는 스토리가 나와야 하는데 슈트만 입었지 정작 내용은 치정 로맨스물 저리가라였다. 감독이 저한테 이런 캐스팅을 한 게 음모라면 가장 큰 음모였다.

"찡그린 표정.. 진이 하루의 목 뒤를 깨문다. 끊길듯한 신음소리.. "

대사가 아니라 지문만 읽었을 뿐인데도 절로 한숨이 터져나왔다. 처음 청불이라고 했을 때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잔인한 장면이 아니라 선정성때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렇게 진하다 못해 노골적인 베드신이라니. 그것도 느와르물에서. 

이래서야 청불은 커녕 극장개봉도 못할 것 같았다. 감독은 물론이고 스구루에게도 당장 멱살을 잡고 그만두라고 외치고 싶었다.(당연히 실제로 그럴 베짱은 없었다.) 저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가 굳이 구설수에 오를만한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이번 캐스팅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요즘 세상이 아무리 개방적이게 변했다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은 동성애에 관대하지 못했다. 적어도 실제 게이인 제가 보기에는 확실히 그랬다. 그래서 여태까지 얼마나 조심하며 살아왔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지금 제일 걱정인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니고 진짜 게이인 것이 들통나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본격적인 배우생활은 해보지도 못하고 연예계는 커녕 사회생활 자체를 접어야 할지도 몰랐다.

"망했어.."

스태프들이 들어오고 인사까지 나누고 나니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까마득한 제 처지가 점점 실감이 났다. 기왕 하기로 한 거 경험을 살려(?) 완벽하게 해보이겠다는 마음도 잠시뿐이고 역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긴장감에 물어뜯은 입술이 터져 찔끔 피맛이 났다.

"안녕하세요."

시간이 임박하여 드디어 주역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스구루였다.

"다이쇼 스구루입니다. 편한대로 불러요."

"..네. 아, 쿠로오 테츠로입니다."

스구루의 자리는 바로 저의 맞은 편이었다. 실제로 보니 역시 연예인이라는 실감이 났다. 저랑 비슷하게 캐주얼한 옷을 입었는데도 무언가 달라보였다. 물론 그냥 주책일지도 몰랐다.

"일찍 왔네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네. 저야말로.."

스구루는 줄곧 사람좋은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저도 따라 웃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내밀어진 손을 맞잡으며 열심히 입꼬리를 당겼다. 신경을 조금만 늦추면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질 것 같았다. 스구루는 주변의 스탭들과도 마저 인사를 나눈 뒤 쿠로오와 똑같이 대본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 미리 준비를 한 모양인지 대본을 여러 번 피고 접은 티가 났다.

조금 뒤, 마지막으로 감독까지 들어오고 나니 텅 비었던 회의실이 어느 새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사람씩 짧은 자기소개가 있고난 후 감독의 지시에 맞춰 본격적인 대본리딩에 들어갔다. 실수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내가 맡은 역할은 '하루'라는 이름의 겁 많은 고아였다. 고아라고는 해도 어릴 때 조직의 양아들로 입양된 탓에 젊은 나이에 간부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는 지금은 겉보기에 어디 하나 꿀릴 것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런 환경덕에 알맹이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겁 많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물론 그 순종적인 소심함을 멍청하게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루의 겁 많은 내면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스구루가 연기하는 '진'이라는 캐릭터였다.

"여긴 왜 왔어."

"누구씨 일처리가 너무 거지 같아서. 좀 도와주려고."

"필요없어. 내가 알아서 해."

진과 하루는 사이가 나빴다. 누구에게나 유순하게 넘어가는 하루가 유일하게 아니꼬움을 표출하는 상대가 바로 진이라는 남자였다. 진은 그 조직의 친아들이었다. 나이도 같고 자라온 환경도 같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달랐기 때문에 하루와는 겉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덕분에 대사를 연기하는 스구루의 목소리도 심술맞았다.

"진작에 알아서 했으면 내가 안 왔지. 안 그래?"

"됐다니까 이 정도는 나 혼자도..!"

"칼은 이렇게 잡는거야."

스구루는 제스처는 없었지만 목소리와 표정에서 상황과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어 올만큼 능숙하게 파트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탄사에 하마터면 대사를 몇 번 놓칠 뻔했다. 큰 실수는 아니어서 다들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풋.'

귀에 박혀들어온 비웃음 소리만 아니었더라면 분명 그렇게 넘어갔을 터였다.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 눈치였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비웃음을 날린 장본인과 직접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스구루는 내가 대사를 더듬거나 감독에게 조금 지적을 받을 때면 빼놓지 않고 비웃음을 날렸다. 괜한 자격지심 같은 게 아니었다. 수치심에 귓가가 화끈거렸다. 좋은 사람인줄 알았더니  내가 누구 때문에 대사를 놓쳤는데. 내가 실수한 건 맞지만서도 괜히 억울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고, 그럼 본 촬영때 봅시다."

겨우 대본 리딩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며 겉옷을 챙겨 입었다. 한 쪽에서 감독과 작가님과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얘기하고 있는 스구루가 보였다. 입안이 텁텁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까지 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신인주제에 집중을 안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울컥 짜증이 났다. 역시 대본받은 날 바로 거절했어야 하는 건데.

"쿠로오씨."

"네?"

"큭, 뭘 그렇게 놀라요."

그거야 당신 뒷담화를 하고 있었으니까. 혼자서 억울함을 삭히고 있으니 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잡아 세웠다. 스구루였다. 다른 스태프들과 즐거워 보이더니 언제 여기까지 온건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세요?"

"별건 아니고 쿠로오씨 나랑 동갑이죠? 말 편하게 하자고."

"아.. 네."

원래 이렇게 스스럼이 없는 사람인가. 꽁한 마음에 표정을 갈무리하는 것도 잊은채 불퉁하게 대답을 했다. 그래도 저쪽을 신경도 안쓰는 눈치였지만.

"존댓말 안해도 된다니까. 아직 많이 불편한가봐?"

"그야 저보다 훨씬 선배시니까.."

친한 척 올려진 어깨 위에 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첫인상이 이렇게까지 나빠질 수가 있나. 평소보다 이상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더한 것도 할텐데 뭘 이 정도 가지고."

"네?"

"뭐 알아서해. 그럼 촬영날 보자. 아, 대사 연습은 많이 해야겠더라. 그게 뭐야."

스구루는 재밌다는 듯 저를 툭툭 치고 씩 웃는 얼굴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약간 얼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세간에 알려진 스구루라는 배우와는 얼굴만 같고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이게 그 유명한 연예계 텃세라던가. 




_(2)에서 계속.



꽁치빌라 건물주 twitter: @rin_kkong 에스크&리퀘: asked.kr/krn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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