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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앜쿨] 우리집 인어가.. 2부 02

02. 준비


※약 9,300자 분량.





02. 준비

_굵은 눈물방울만 뚝뚝 흘렸다. 사실 소리도 잘 나지 않았다. 너무 서러우면 소리가 안 난다던데 저가 그런가 싶었다.




24.

아카아시가 갑작스럽게 집을 나간 지 이틀 째. 연락은 간간이 하고 있었지만 잠깐씩이나마 보던 얼굴마저 사라지니 집안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속상했다. 기대하고 있던 서프라이즈도 못하고 아니 하다못해 좀 쉬기라도 하고 갔으면 이렇게 까지 마음이 안 좋진 않았을 텐데 아직도 그의 찡그린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래도 밥은 거르지 않고 꼭꼭 챙겨먹었다. 수면시간 역시 졸리지 않더라도 따뜻한 우유 한 컵으로 잠을 청했다. 이제 쿠로오 혼자의 몸이 아닌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가 잘못되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쿠로오는 아직 태도 잘 나지 않는 제 배를 살살 문지르며 ‘아가야’하고 말을 걸었다. 혼자 있으니 심심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서 고작 이틀 새에 입에 착하고 붙어버렸다. 간질간질한 어감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어제 저녁 아카아시와 통화한 바로는 늦어도 내일 오후에는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꼭 저녁을 같이 먹자면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문자로 남겨 놓으라고 했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도 당연히 함께였다. 벌써 세 번도 넘게들은 말이었다.

쿠로오는 아카아시에게 그냥 오라는 문자를 보내놓고 본격적으로 요리 준비를 했다. 사오는 것도 좋지만 오랜만에 아카아시에게 제대로 된 저녁을 차려주고 싶었다. 그도 그럴게 최근 아카아시가 먹은 거라곤 간단한 시리얼이나 샌드위치, 주먹밥 정도가 전부였다. 많이 차려놓아도 별로 먹을 여유가 없었던 탓이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저 육수를 내는 것 뿐 이었지만 벌써부터 만족감이 차올랐다. 한쪽에는 적당한 크기로 썰린 소고기와 각종 해산물들도 넉넉하게 준비돼 있었다. 아카아시도 그렇고 쿠로오도 그렇고 약간은 슬림한 듯한 몸매와 달리 꽤나 잘 먹는 편이어서 한 번 제대로 먹으려면 양은 항상 푸짐할수록 좋았다.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오면 바로 끓여서 먹을 수 있도록 대강 준비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데에는 TV만 한 것이 없었다.

“아..”

TV를 보다 깜빡 졸았는지 시간이 벌써 8시를 넘어 있었다. 평소에는 재방송도 많이 해주더니 정말 볼 게 없었다. 쿠로오는 그냥 전원을 꺼버리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카아시가 어디 나갈 때는 꼭 들고 다니라며 선물해준 것이었다.

아쉽게도 핸드폰에는 아무런 연락도 안 와있었다. 쿠로오는 아카아시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하다가 결국은 그냥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마 운전중일 텐데 괜히 신경 쓰이게 할 것 같았다. 딱 30분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도착하지 않으면 그 때는 다시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빈둥빈둥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보고 있으니 시간은 잘만 지나갔다. 순식간에 흘러간 30분에 쿠로오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기다리기도 힘들어서 쿠로오는 바로 키패드를 열고 단축번호를 눌러 아카아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조로운 통화음이 뚜르르 울렸다. 하지만 정작 들여야 할 아카아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쿠로오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전화도 안 받고 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했다.

그렇게 쿠로오가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무렵, 놀랍게도 소리가 들린 것은 현관문 쪽이었다. 쿠로오는 전화기를 내팽겨 쳐두고 현관을 향해 폭삭 몸을 던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카아시였다.

“다녀왔어.”

조금 늦은 저녁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레 식사를 마쳤다. 미리 준비를 해놓은 덕에 간단히 손만 씻고도 바로 먹을 수 있었다. 고소한 계란 노른자와 함께 먹는 고기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아카아시도, 쿠로오도 모두가 배부른 저녁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까지 마치자 둘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한숨을 돌렸다. 일도 끝나고, 밥도 다 먹고 이제야 조금 쉬는 기분이 났다. 아직 샤워는 해야 했지만 잠시 미뤄도 좋을 것 같았다. 기대어 있는 어깨에서 편안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럼 이제 일 다 끝났어?”

“응.”

“어디 나가지도 않을 거지?”

“그래.”

“그럼..여기서 잠깐 기다려봐.”

가만히 저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고 있던 쿠로오는 이내 결심한 듯 2층 침실로 향했다. 침대 옆 서랍에 고이 넣어둔 선물상자를 꺼내 내용물을 확인하고 다시 뚜껑을 닫아 품에 소중히 모시고 나왔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웃으면 안 돼. 흠흠.”

쿠로오는 표정을 한 번 가다듬고 거실로 내려왔다. 아카아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또 입가가 삐죽거렸다.

“이게 뭐야?”

쿠로오가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건넸다. 아카아시가 어떻게 반응해줄지 궁금했다.

“케이지 선물이야.”

“선물?”

“얼른 열어 봐.”

아카아시가 상자를 열자 솜 안에 파묻혀있던 짤막한 막대기 하나가 드러났다. 저번에 쿠로오가 사가지고 온 연분홍색 임신테스트기였다. 이제는 선명한 빨간색 두 줄이 찍혀있는 테스트기가 되어있었다.

“...”

“..케이지?”

깜짝 놀라는 반응을 기대했던 아카아시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자 갑자기 불안해진 쿠로오가 그를 불렀다. 분명 아이가 생겨도 좋겠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맞춰주기 위한 거짓말이었나 싶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정말..”

들릴 듯 말듯한 아카아시의 목소리가 내뱉는 숨에 가늘게 섞여 나왔다.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려서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잘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쿠로오의 얼굴이 불안으로 살며시 찡그려졌다.

포옥.

하지만 쿠로오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카아시가 한 대답은 더할 나위 없는 포옹이었다. 그저 한 마디 말보다 전해지는 게 훨씬 많았다. 아카아시가 고개를 묻은 어깨에서 뭉근한 열기가 올라왔다. 가슴이 찌르르 한 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울고 싶어서 표정이 이상해졌다.

“...”

한참을 가만히 껴안고 있다가 다시 바라본 서로의 눈가에는 붉은 울음기가 남아있었다. 그래도 눈을 마주치니 또 참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해서 베시시 실없는 웃음이 났다. 바보같이 울어도 좋단다.

그 후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감았다. 아카아시가 조심스레 볼을 감싸자 키스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아카아시의 입술이 쿠로오의 작은 입을 빠짐없이 덮었다.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고, 또 느릿하게 핥아 올렸다.

애틋하기만 한 모습이 꼭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그렇게 괜찮다고 했는데도 말로 안 되니 이번엔 행동으로 보여준다. 역시 아카아시는 학습이 빠른 남자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쿠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을 잘 듣는 아이에게는 상을 주어야 했다. 아카아시가 쿠로오에게 늘 그래주었던 것처럼.

 

“사랑해. 케이지.”

 


25.

“보여 저기? 얼굴이랑 팔, 다리. 성별은..”

안 알려줘. 마츠카와가 미끌미끌한 초음파 기기를 쿠로오의 배에서 떼어냈다. 배가 아직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제법 티가 났다.

“..야 되는데 렌이랑은 같이 못 놀겠다.”

마츠카와가 씩 웃으며 수건을 건네줬다. 옆에 있던 아카아시가 받고는 쿠로오의 배위에 묻은 젤을 닦아줬다.

“아, 남자앤가 봐. 케이지.”

“그런가 보네.”

“우리 딸은 절대 못 줘.”

“풋,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마츠카와가 단호한 얼굴로 선을 긋자 쿠로오가 큭큭 웃음을 흘렸다. 벌써부터 이렇게 경계심이 투철해서야 나중에 결혼도 못 시킬 거라고 할 게 뻔했다.

“검사는 끝났고, 사진은 이따가 줄 테니까 가져가.”

“네.”

“아, 온 김에 수액도 조금 맞고 가고. 잘 좀 먹어. 더 살 빠지면 진짜 큰일 나. ..아직도 많이 심해?”

“그냥 좀..”

“어제도 하루 종일 사과 하나 밖에 못 먹었습니다. 물도 잘 못 마셔요. 먹어도 다 토해서 더 먹일 수가 없어요. 영양제라도 추가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대충 얼버무리려던 쿠로오의 말을 끊고 아카아시가 조목조목 상태를 말했다. 아카아시의 말대로 쿠로오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먹을 거 잘 먹고 자는 시간이 좀 늘었다는 정도를 빼면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 뒤늦게 찾아온 입덧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영양제는 안 돼. 제대로 먹을 걸 먹어야지. 여기서 더 늘리면 애한테도 안 좋아.”

“..그럼 그냥 이대로 있어야 된다는 얘깁니까.”

일단은. 마츠카와가 씁쓸하게 말하자 아카아시가 착잡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예약 잡아놓을 테니까 까먹지 말고 와. 그전에도 더 안 좋아지거나 이상하면 바로바로 오고.”

쿠로오와 아카아시는 간호사에게 초음파 사진을 받아 나란히 병원을 나왔다. 아카아시의 품에 안기다시피 약국으로 향하는 쿠로오의 어깨가 유난히도 가늘었다.

“테츠로, 지금은 속 괜찮아? 점심 먹을 수 있겠어?”

“...”

쿠로오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카아시가 걱정할까 얼굴에는 미소를 띠우고 있었지만 버석하게 마른 입술이 거짓웃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둘은 약국에서 영양제 몇 가지만 사들고 바로 차로 향했다. 먹은 게 없으니 당연히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는 쿠로오 탓에 장시간 외출은 무리였다.

집에 돌아와 쿠로오는 옷만 갈아입고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것 조금 나갔다 왔다고 온몸이 나른했다. 아카아시는 베개를 가져다 대어주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왔다. 입덧 전에는 아카아시의 등쌀에 못 이겨 하나씩 집어먹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유일한 영양공급원이었다. 그나마도 딱 하나까지가 정량이었지만 아예 못 먹는 것 보다야 훨씬 나았다.

“테츠로, 사과. 힘들어도 조금씩 먹어.”

아카아시가 축 쳐진 쿠로오를 바라보며 까칠한 얼굴을 쓸었다. 최근 쏙 빠져버린 볼살에 혈색이 눈에 띄게 핼쓱해졌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이렇게 무능력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차라리 제가 아팠으면 좋았을 것을. 후타구치 대신 입덧을 했다던 마츠카와가 부러워졌다.

“케이지, 나 졸려..”

먹는 둥 마는 둥 사과를 깨작이던 쿠로오가 아카아시의 가슴에 슬슬 얼굴을 부볐다. 어리광을 부릴 때면 종종 하던 것이었는데 귀엽기만 했던 그 행동이 이렇게 안쓰럽게 느껴질 줄은 또 몰랐다.

“침대로 갈까?”

“..응.”

아카아시가 쿠로오를 안아들고 2층으로 향했다. 무거워 졌어야 할 몸이 더 가벼워진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배가 됐다. 최근 목욕을 시켜주며 봤던 몸이 더 갸냘퍼져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쿠로오는 침대에 몸을 뉘이고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몸이 안 좋으니 계속 잠만 자게 되는 것이었다. 깨어나 있을 땐 늘 울렁이는 속과 머리가 이젠 일상이 됐다. 아카아시는 쿠로오를 재우고 계속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무슨 꿈을 꾸는지 잘 때만 살짝씩 내비치는 미소에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잠은 그래도 잘 자고 있나보다 하고.

쿠로오는 저녁시간을 훌쩍 넘겨 밤 9시쯤이 돼서야 살며시 눈을 떴다. 아카아시가 불을 꺼두었는지 방안이 깜깜했다. 쿠로오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침대 옆에는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는 아카아시의 모습이 보였다. 비몽사몽 했던 정신이 훅하고 깨어났다.

왜 여기서 이렇게 불편하게 자고 있는지. 울컥 목이 따가워졌다. 임신중에는 감정에 민감해 진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같이 올라와서 자도 충분히 넓은 침대이건만 이 미련한 남자는 저가 혹시나 불편해할까 손가락 하나만 맞닿은 채 구부정하게 자고 있었다. 맞닿은 손가락 끝이 홧홧했다.

그냥 옆에 있지를 말지. 가서 TV나 보고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랬다면 저가 이렇게 미안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카아시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도 괜히 원망스런 생각이 들었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그래도 아카아시 앞에서는 힘든 것도 많이 참고, 울지도 않았었는데 저처럼 까칠해진 얼굴을 보니 그동안 꾹 참아 왔던 것들이 막을 틈도 없이 펑하고 터져버렸다.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깰까봐 소리도 못 내고 굵은 눈물방울만 뚝뚝 흘렸다. 사실 소리도 잘 나지 않았다. 너무 서러우면 소리가 안 난다던데 저가 그런가 싶었다. 입을 열어도 아하는

입덧 같은 거 그냥 몇 번 속 안 좋으면 금방 끝날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힘들 줄은 정말 몰랐다. 먹고 싶은 게 눈 앞에 있어도 먹을 수가 없고, 조금 잘 먹히나 싶으면 바로 화장실 신세였다. 아카아시가 고생해서 만들어준 어떤 음식도 세 숟갈 이상은 떠본 적이 없었다. 제일 좋아했던 꽁치는 기피음식 1순위로 올라 간지 오래였다. 생선 비린내라는 게 이렇게 속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가장 슬픈 것은 아카아시도 여태 굶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 때문에 힘든 일은 다하면서도 똑같이 먹지도 않았다. 힘들게 분명한데도 내색 한 번 하는 법이 없었다. 미안하고 아무것도 못 먹는 자신에게도 화가 나서 더 울음이 났다. 마냥 기쁘기만 했던 아이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흐으....”

아카아시가 보고 싶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서러운지 모르겠다. 너무 나쁜 생각만 한 것 같아 아기가 들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그만 울어야 되는데 괜히 더 슬픔이 몰려들었다.

“아...하으....”

“..테츠로?”

“흡...케이지....”

침대가 들썩이자 잠귀가 밝은 아카아시는 바로 깨어났다. 아카아시는 세상 서럽게 울고 있는 쿠로오의 모습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침대위로 올라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셔츠의 어깨부분이 따뜻하게 젖어들었다.

“케이지...미안해...흐읍..”

“...”

“밥도 못 먹고....다 토하고..나도 먹고 싶은데...흑..하으...케이지도 못 먹고..”

“...”

“..나 때문에.. 아기 아프면 어떡해....흐윽.. 나쁜 생각도 해버렸는데...나 아기 안 미워하는데..흐앙..”

“...”

“..아기도 울고 있으면 어떡하지...케이지이....”

아카아시의 토닥임에 쿠로오의 울음소리가 더 거세졌다. 달래줄 때마다 더 심하게 울어버리니 문제였다. 역시 괜찮을 리가 없었다. 차라리 우는 편이 나은지도 몰랐다. 억지웃음을 짓는 걸 보고 있으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지 몰랐다. 아카아시는 제 눈물에 못 이겨 떨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쿠로오를 더 깊이 품에 안았다. 며칠 새 눈에 띄게 마른 몸이 바들바들 안겨왔다.

“..미안해..케이지...미안해.....”

“...”

“..근데..흑 나도 아는데..너무 힘들어...흐아앙..”

힘들다라는 말이 쿠로오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하고 제발 바랬던 것인데 이렇게 직접 듣게 되니 무게감이 남달랐다.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짓무른 듯 격한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테츠로. 그만 뚝.”

“흡..하윽...케이..지...”

“테츠로가 뭐가 미안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흐윽..그치만..”

"괜찮아. 좀 더.. 많이 기대도 되니까.."

"흐윽...히끅.."

"..조금만 더 울고 그치자. 알았지?"

아기도 테츠로가 계속 울면 슬플거야. 아카아시의 나긋한 목소리가 귓가를 어루만졌다. 아카아시가 괜찮다고 하니까 다 괜찮을 것 같았다. 한계까지 치달았던 마음에 단비 같은 위로가 됐다. 어쩌면 먹을 것 하나보다도 이런 사랑이 더 고팠는지도 몰랐다.

 


26.

입덧은 쿠로오가 펑펑 울다 쓰러지듯 잠이 든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없어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만큼이나 떠나는 것도 갑작스러웠다. 고맙기는 했지만 그간의 고생이 조금은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 뒤로는 나름 평화로웠다.

일단 잘 먹기 시작하니 토실토실 살이 붙어 아카아시가 한시름 걱정을 덜었다. 하얗게 질려있던 그 때에 비하면 훨씬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테가 거의 나지 않던 배도 점점 크게 불러왔다. 집에 있던 옷들은 모두 맞지 않아 옷가게에 들러 한참 헐렁헐렁한 티셔츠를 구해다 입었다. 배에 사이즈를 맞추다보니 같이 커진 길이에 입고 있으면 꼭 원피스 같았다.

"테츠로. 앞에 와서 앉아."

아카아시가 침대에 기대 앉아 쿠로오를 불렀다. 불러온 배 덕분에 저녁마다 튼살 크림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있는 아카아시였다. 쿠로오는 이 다정한 시간을 꽤나 좋아했다.

쿠로오가 제 앞에 자리를 잡자 아카아시는 둥근 원통을 열어 하얀 크림을 듬뿍 덜어냈다. 갑자기 차가운 게 닿으면 놀랄까 싶어 먼저 제 손에 비벼 데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배 당기지는 않아?"

"응."

"어디 안 좋으면 바로 얘기해. 참지 말고."

"알았어."

"..또 아플까봐 걱정이야."

아카아시가 쿠로오의 수척했던 모습을 떠올린 듯 배를 문지르는 손길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괜찮다고 해도 아카아시가 계속 노심초사하는 걸 보고 있으면 쿠로오는 저가 작은 솜뭉치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아."

배에서 툭 하는 발길질이 느껴졌다. 저를 의심하는 듯 한 아카아시의 말에 아기도 발끈한 모양이었다. 얌전히 있었는데 오해를 받았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푸스스 웃음이 났다.

"큭큭, 사과가 화났나 봐. 얼른 미안해 해줘, 케이지."

"..미안해."

아기의 태명은 '사과'였다. 입덧 때 그나마 쿠로오가 먹었던 음식이어서 아기는 사과를 좋아하나 보다 하고 단순하게 '사과'로 정했다. 전적으로 쿠로오의 의견이었다.

"아, 한 번 더 찼어. 용서해주는 건가."

"그랬으면 좋겠네."

그러고 보면 처음 태동을 느꼈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른다. 아카아시와 쿠로오 둘 다 배에 손을 대고 언제 한 번 더 차나 숨죽여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시크한 사과는 두 번 차주진 않았다.

"이제 잘까?"

"응. 바로 잘래."

아카아시가 꼼꼼히 이불을 덮어주었다. 내일은 마츠카와에게서 정기 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중요하게 할 얘기도 있다고 하니 되도록 일찍 오라고 했더랬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사과와 관련된 얘기일 테니 조금 긴장이 됐다. 나쁜 소식만 아니라면 좋을 텐데.

 


27.

"..."

다음날, 마츠카와의 진료실 안에 무거운 정적이 맴돌았다. 아카아시와 마츠카와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그 둘 사이에 끼인 쿠로오만 안절부절해 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아카아시가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을 뱉었다.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당연히 ‘위험하니까’지."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한다면서요."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난 의사야. 아니 환자가 의사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해?

"..저기.."

쿠로오가 소심하게 끼어들었다. 하지만 둘다 신경전으로 바쁜 덕에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아..이렇게 말 바꾸실 겁니까?”

“내가 뭘.”

마츠카와가 뻔뻔스레 응대했다. 얼굴에 철판이 두 장은 되는 것 같았다.

“방금까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건 아까까지 얘기고.”

“아까랑 뭐가 달라졌는데요.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라도 제대로 얘기 해주시죠.”

“...”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면 다예요?”

아카아시가 답답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쿠로오와 관련된 문제에 잔뜩 예민해졌다.

“너.”

“...”

“나와.”

마츠카와가 아카아시를 꼭 집어 진료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리곤 둘이서만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오더니 마츠카와가 승리자의 표정을 하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왔다. 반면에 같이 들어온 아카아시의 얼굴은 어딘가 찝찝해보였다.

“테츠, 잘 해결됐어. 아카아시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네, 큭큭.”

마츠카와가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응. 테츠도 이번 주부터 와서 교육 받고 가. 스파르타로 가르쳐줄테니까 각오하라고, 아카아시.”

“..제대로 가르쳐주기나 하시죠.”

아카아시가 약간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건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별로였다.

“당연하지. 나도 얼른 ‘사과’ 보고 싶거든.”

 




_continued



꽁치빌라 건물주 twitter:@rin_k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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