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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쿠로] 고양이줍이 01

kuroo's

 

 




Kuroo

the cat; in need of love

 


 

1.

쾅, 쾅, 쾅, 쾅-

다음 날 아침, 쿠로오는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찾아오기엔 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낡은 현관문이 시끄러웠다.

쿠로오는 짜증 섞인 찡그림과 함께 찌뿌듯한 몸을 조금씩 뒤척였다. 잠을 자도 개운한 맛이 없고 더 찝찝하기만 했다. 밤새 추위에 떤 몸은 삐그덕 삐그덕 곡소리를 냈다. 감긴 눈꺼풀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쾅, 쾅, 쾅, 쾅-

'아이구, 그만 좀 두들겨. 문짝 부서지겠다.'

'이거 집에 없는 거 아니야?'

'아직 잘 시간이잖아. 좀 기다려봐.'

쿠로오가 나오지 않자 밖에선 대화소리가 점점 커졌다. 벽이 얇아서 아담한 집안 가득 두 사람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주인아주머니와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러게 그냥 열쇠를 달라니까 왜 이렇게 일을 귀찮게 해!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나 바로 나가봐야된다니까?'

'얘가 좀 기다리래도! 아주 성격 급한 것도 지 아빠를 쏙 빼 닮았어.'

'하아, 그 놈의 아빠타령 그만 좀 해. 지겹지도 않아?'

쿠로오는 점점 격해지는 말소리에 결국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내심 자는 척 버텨보려 했지만 꼭두새벽부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가혹한 인생답게 맘 편히 잘 팔자가 못 되었다.

쿠로오는 어쩔 수 없이 이불을 걷고 현관문 앞에 섰다. 손으로 뜨거운 눈 주위를 문질러 억지로 시야를 틔우고, 세수도 하지 못한 채 비누보다 문고리를 먼저 잡았다. 흠칫. 갑자기 일어난 탓에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귀찮은 저혈압이었다.

불투명한 유리문에 거뭇한 쿠로오의 실루엣이 비쳤다. 인기척을 확인했는지 그제야 밖의 말소리가 뚝하고 끊어졌다.

끼익-

기분 나쁜 소음을 내며 철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처음 보는 남자와 함께 익숙한 차림새의 주인아주머니가 서있었다. 남자는 이제 막 20살이 되었을까, 상당히 앳되어 보였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입이 3센치는 나와 보였다.

“아, 드디어 나왔네. 뭐하는데 이렇게 늦게나옵니까? 기다리다 목 빠지겠네.”

내뱉는 말도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찍 무슨 일이세요?”

“그게.. 다름이 아니고...”

쿠로오는 남자는 무시하고 주인아주머니에게 용건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긴히 부탁이 하나 있다고 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을 잇는 것이 어딘가 켕기는 것이 있어보였다.

“여기가 우리 아들인데 처음보지? 사실 이번에 얘네 아빠가 사고를 좀 쳐가지고..”

지금 경찰서에 있어. 아주머니는 마치 쿠로오 보고 들으라는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얘기를 꺼냈다. 콩가루 같은 가정사 얘기였다.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 아저씨가 그렇다니까. 저번엔 또 술 먹고 그 난리를 피우더니.. 내가 속이 터져서..!”

“아, 그만 좀 해. 나 바쁘다니까! 언제까지 망할 집구석얘기만 떠벌리고 있을 거야?”

옆에서 초조한 듯 다리를 달달 떨던 남자는 드디어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할 테니까 엄만 그냥 가만히 있어.”

비켜요. 남자는 쿠로오의 어깨를 툭 밀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제 집이라도 되는 양 자연스러운 몸놀림이었다.

남자는 진흙 묻은 신발도 벗지 않고 몇 평 남짓한 원룸을 이리저리 훑으며 돌아다녔다. 쿠로오는 바닥에 검게 남은 빗물과 흙 자국을 바라보며 어쩌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딱히 말리지 않았다. 말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좁아도 뭐 괜찮네. 근데 저긴 청소 좀 해야겠다. 곰팡이 폈어.”

남자는 겉으로만 시니컬한 척, 온 바닥에 제 흔적을 남기고서야 밖으로 나왔다. 힐끗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내 시간이 정말 다 되었다는 걸 알았는지 황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내일 오전까지는 짐 다 뺄 수 있죠? 보니까 몇 개 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시간 남으면 청소도 좀 해주면 좋고.”

“네? 뭘 빼라고요..?”

“난 이제 가야되니까 알아서 짐정리 잘 하시고. 아, 열쇠는 이따 돈 받으면서 엄마주면 됩니다. 그럼 이만. 엄마, 나 가.”

남자는 후다닥 제 할 말만 툭 내던진 채 가파른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쿠로오는 멋없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태연히 아들을 배웅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짐을 빼라니. 아까 했던 콩가루 이야기는 이를 위한 변명쯤 되는 모양이었다.


*** 


‘쿠로오한테는 미안하게 됐어.. 난들 이렇게 사고가 날 줄 알았나..’

‘...’

‘그래도 내가 섭섭지 않게 넣었으니까, 응?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래. 이해하지? 어디 말하고 다니고 그러면 안 돼?’

정리를 마친 쿠로오의 손에 큰 가방이 들려있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살아온 곳이지만 막상 떠나려니 짐이라곤 고작 낡은 옷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사계절 옷을 다 합쳐도 조금 큰 가방 하나에 몽땅 들어가니 말 다한 셈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이것보단 조금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좁은 싱크대를 뒤져 빛바랜 수저 두 쌍만 얌전히 챙겼다. 처음 사왔을 때만 해도 보라색 꽃 넝쿨이 선명히 그려져 있던 손잡이는 닳아지다 못해 반질반질 윤이 났다. 이렇다 할 장신구 하나 없으셨던 할머니가 남긴 유품 아닌 유품이었다.

털썩.

가방이 김빠진 소리를 내며 현관 바닥에 떨어졌다. 쿠로오는 그 옆에 앉아 흙투성이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짐정리 하는데 몽땅 써버리고 나니 안 그래도 바닥을 기던 몸 상태는 더 땅을 파고 떨어져버렸다.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어지럼증은 그칠 생각이 없엇고, 얼굴에는 열이 올라 굳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이마가 뜨끈뜨끈해진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저녁 내내 비를 맞아 몸살기가 더 심해진 탓이었다. 그 몇 안 되는 짐정리가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이기도 했다.

‘집구할 때까지 요 밑에 찜질방에라도 가있으면 될 거야. 피곤할 텐데 가서 몸도 좀 지지고.’

‘...’

‘어제도 알바 하느라 늦게 들어왔지? 그래, 아줌마가 짐정리 하는 것 좀 도와줄까? 뭐든 말만 해.’

주인아주머니는 겉으론 친한 척 쿠로오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들이 잠자리가 예민해서 자기 집에서는 재울 수가 없다는 둥, 그래도 아들인데 길바닥에서 자게 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이미 무너질 것 같은 쿠로오의 머리에 이기적인 변명들을 내리 꽂았다.

‘나는 찜질방, 예민한 아들은 집. 아픈 사람은 길바닥.. 예민한 아들은 집..’

다 본인이 편하고자 하는 소리였다. 아무리 허울 좋은 이유를 갖다 붙여도 쿠로오가 당장 이 집에서 쫓겨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유일한 알바자리도 잘린 마당에 수중에 남은 거라곤 동냥 받은 월급과 이번 달 월세 몇 푼이 전부였다.

쿠로오는 신발을 다 신고도 힘이 죽 빠져 일어서지 못하고 뒤로 누웠다. 아직도 ‘쿠로오니까 이해하지?’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왕왕 울리는 듯했다.

모로 누워 방안을 바라보니 어제의 신발 자국위로 바퀴벌레가 기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엄지손가락만한 집 바퀴벌레였다. 쿠로오는 익숙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전에 놓아둔 붕산 섞인 계란 노른자가 수명을 다했나보다 생각했다. 빨빨거리며 힘차게도 돌아다녔다. 제 대신 들어와 산다는 ‘예민한’ 아들이 이걸 보면 얼마나 기겁을 할까 상상이 됐다. 괘씸한 마음에 신발 자국도 닦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열심히 다리를 놀리며 돌아다니는 바퀴벌레가 그렇게 반가워 보일 수가 없었다. 과자라도 있다면 손수 밥을 챙겨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앞에선 말 한마디 못하다가 이런 것도 소심한 복수라며 좋아라하는 심보가 우스웠다.

쿠로오는 차가운 손을 들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시원한 것이 닿으니 조금은 머리가 개운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대로 손을 내려 튀어나올 듯한 눈 주위도 꾹꾹 눌렀다. 그새 손이 미지근해져 있었다.


***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속에 아침도, 점심도 건너뛰었다. 끙끙거리며 짐 가방을 들고 마땅한 알바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당연하게도 수확은 없었다. 웬만한 알바자리는 이미 스펙 좋은 대학생들이 꿰차고 있었고, 쿠로오가 갈만한 일자리는 날이 지고서야 영업을 시작했다. 갈 데가 없었다.

쿠로오는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공원을 찾았다. 아침에 그 집을 나오면서 다시는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동네 놀이터로 향하는 자신이 있었다. 지극히도 좁은 생활반경이었다. 다른 곳을 찾아 볼 만도 하건만 몸이 피곤하니 점점 아무래도 좋게 됐다.

오늘만 해도 안색이 퍼래 초췌한 몰골로 면접도 전에 퇴짜 맞기를 여러 번. 병원을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어차피 몸살감기인 것을, 가도 얼마나 나아질까 싶었다. 무엇보다 사치부릴 돈도 없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당장 엉덩이 붙일 월세 방 하나 구하기도 빠듯한 게 현실이었다.

 

놀이터는 어릴 때 본 것보다 한참은 작아져 있었다. 실제 크기는 변함이 없지만 쿠로오가 컸기 때문이었다. 커서는 잘 찾지 않았으니 오랜만에 풍경이라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쿠로오는 아무도 없는 원통형 미끄럼틀 안에 누웠다. 사실 미끄럼틀뿐만 아니라 놀이터엔 아무도 없었다. 불과 몇 블록 안 떨어진 주택가에 새 놀이터가 생겼는데, 쿠로오가 어린 아이였더라도 이런 낡아빠진 놀이터에 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은 게 용했다.

햇빛을 가려 그늘이진 미끄럼틀 안은 더 차갑고 딱딱했다. 열이 오른 몸이라 시원하게만 느껴질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적당히 기분이 나빴다. 눈을 감고 오른팔을 눈꺼풀 위에 올렸다. 왼손으론 가방을 안아 배위에 올려두고 숨을 골랐다. 신발 안에서 멋대로 움찔거리는 발가락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딱 이맘때 쯤이었다. 아프고 외로우니 더 사무치게 생각이 났다.

‘벌써 잊어버렸겠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 저 혼자 애틋해서 아직도 놓지 못했다. 그래, 꼭 이 놀이터 같다. 원치 않은 헤어짐이라 못난 미련이 뚝뚝 흘렀다. 사실은 그 날, 저도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잠도 설칠 만큼 설레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버린 걸까.




_continued



꽁치빌라 건물주 twitter: @rin_kkong 에스크&리퀘: asked.kr/krn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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