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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쿠로] 고양이줍이 intro.


※대학생 스구루×고아 쿠로오 

(둘의 나이는 동갑입니다)





intro.

 The cat is in the box.




“너 이 새끼,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죄송합니다.”

쿠로오의 까만 머리칼에서 차가운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알싸한 냄새를 보니 술인 모양이었다. 추운 날씨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지만 쿠로오는 차마 얼굴에 묻은 물기조차 닦아낼 수 없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 내뱉을 뿐이었다. 앞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는 나이든 사장은 쿠로오의 처량한 몰골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정사정하길래 뽑아줬더니..아주 장사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VIP한테 술을 부어? 제정신이야? 돌았어?”

“..죄송합ㄴ..”

“이따위로 일하고 돈은 돈대로 받아쳐먹으려고..아주 요즘 젊은 놈 새끼들은 돈독만 올라가지고 무서워죽겠어."

"..."

"넌 오늘부로 해고야. 당장 옷 벗고 나가.”

제 할말을 끝낸 사장은 뒤도 안돌아보고 창고같은 휴게실을 나갔다. 심란한 쿠로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쾅하고 문닫히는 소리가 났다. 큰소리에 놀란 어깨가 움찔거렸다.

천천히 들어올린 쿠로오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문자그대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표정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탁하게 질린 안색만 봐도 쿠로오가 얼마나 당혹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는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지금 당장 쓰러진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쿠로오는 마지못해 입고있던 조끼를 벗어냈다. 새하얀 셔츠에 까만 조끼와 바지. 어느 술집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유니폼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오래 입어보나 싶었는데 작은 바람조차 와그작 깨져버렸다.

살갗이 비치도록 술에 젖은 셔츠를 마저 벗어내고 여전히 물기는 닦지 못한 채 옷을 갈아입었다. 입고온 후드티에 축축한 습기가 찼다. 밖에 나가면 얼마나 추울지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끼익- 덜컹.

옷을 다 갈아 입고, 새끼손가락 반만한 열쇠를 돌려 사물함을 잠갔다. 싸구려 철제 사물함은 늘 그렇듯 녹슨 소리가 났다. 특별히 놔두고 다닌게 없어서 원래 옷과 몸뚱이말고는 챙길 짐도 없었다.

쿠로오는 유니폼과 사물함 열쇠를 챙겨 매니저에게 건네고, 터덜터덜 가게를 빠져나왔다. 쌀쌀맞은 매니저는 술에 절은 옷을 질색하며 받더니 뒷문으로 나가라며 손가락질했다. 밀린 월급얘기를 꺼냈더니 더 인상을 찡그린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매니저는 못마땅한 기분을 숨기지 않은 채 봉투하나없이 카운터 금고에서 수표와 때묻은 지폐 몇 장을 꺼내 쿠로오 손에 쥐어줬다. 마치 지갑에 있는 쓸데없는 십원짜리 동전들을 거지들에게 던져주며 우쭐해하는 모양새였다. 이제 지갑이 텅 비었으니 얼마나 인심이 좋으냐하고. 정작 중요한 돈들은 실체없이 카드에 있는 것과 같았다.

동냥으로 받은 돈은 한참이나 모자랐다. 당연했다. 이런 술집에서 현금으로 결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저번달 밀린 월급의 채 반도 되지 않았다. 이번 달도 벌써 중순을 넘어가는데, 따지자면 족히 두 달치 월급을 아무런 반항없이 떼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쿠로오는 더 달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지갑이 텅 비어버린 것을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잘한 천원짜리 지폐는 물론이고 심지어 백원짜리 동전들도 주머니에 있었다. 정말이지 알뜰하게도 월급을 챙겨받았다. 비록 우월감에 찬 동정이지만 성질 나쁜 사장에게 얘기했더라면 은혜도 모르는는 '고아새끼'라며 그냥 맨몸으로 쫓겨났을지도 몰랐다. 그럼 그렇지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예의가 없다고, 언제나 정해져있는 헤어짐이었다. 뺨이나 더 안 맞으면 다행이었다.

쿠로오가 돈을 챙겨 뒷문을 향하는 동안, 같이 일하던 직원들의 힐끗거리는 눈길이 찔끔찔금 달라붙었다. 머리카락에서 덜 마른 알코올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누구하나 괜찮냐고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보고도 모른척하는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속으로는 불쌍하다 생각해도 말을 걸 의리는 없는 탓이다. 사장에게 깨지고 쫓겨나는 몸. 괜히 말을 붙였다가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안됐다고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는지도 몰랐다. 쿠로오의 어깨가 축 내려앉았다.

 

 ***


밖에는 때아닌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저녁에 가게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안 왔었는데, 밤이 되니 제법 줄기가 굵은 것이 내렸다. 입춘이라고 달력에 써있던 것이 바로 어제였는데, 봄이 시작되기는 커녕 여름철 장맛비가 쏟아져내리는 듯했다. 차라리 여름이면 시원하기라도했지 겨울과 다름없는 초봄에 쏟아지는 비는 절대 달가운 것이 못 되었다. 쿠로오는 캄캄한 하늘을 바라보다 후드티에 딸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도로로 나왔다. 우산도, 가릴 외투도 없으니 이게 최선이었다.

안이 젖은 채로 옷을 입어그런지 차가운 밤공기에 축축히 물기 어린 배가 시려왔다. 분명 옷을 입고 있는데도 비바람이 천을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추운 겨울날 알몸으로 노출된 피부에 누군가가 얼음물 든 스프레이를 칙칙 뿌려대는 느낌이었다. 너무 춥다 못해 화가 났다.

 

집에서 10분거리의 골목길. 한참을 부지런히 걷다보니 우중충한 판잣집이 즐비한 달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쿠로오가 어릴때부터 15년 가까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저 앞 코너에 익숙한 동네슈퍼가 보였다. 불이 꺼진 것을 보니 주인 할아버지는 이미 자러 들어가신 듯했다. 생각해보니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눈치없는 비는 여전히 그칠 생각이 없고, 남은 길은 전부 오르막길이었다. 눈감고도 오를 수 있는 길이었지만 어쩔수 없이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 절벽같이 가파른 계단은 몇 번을 올라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결국 집을 코앞에 두고 쿠로오의 발걸음이 점점 더뎌졌다. 이미 하루종일 노동에 지쳐, 더구나 술 맞고, 비까지 맞아 으슬으슬해진 몸은 퍼붓는 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한계였다. 발버둥쳐도 더 아래로 축축 쳐질 뿐이었다.

힘 빠진 다리를 옮겨 벅차게 계단을 올랐다. 진흙펄에 빠진 것마냥 발목이 무거웠다. 다만 한숨은 나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한숨을 내쉴 만큼 입을 달싹이기도 싫었다. 닭살이 돋아 오돌토돌해진 피부가 간헐적으로 떨려왔다. 괜히 머리와 눈주위로만 열이 몰렸다. 아마 집에 도착하면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당장 내일은 어디서 또 일을 구해야할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_continued



꽁치빌라 건물주 twitter:@rin_k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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