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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른] 전국시대 치정물 01

스구쿠로아카+보쿠



※< 제목미정(추천도 받습니다. 정해지면 바꿀게요.) >

※삼각관계 쿠로른: 스구쿠로아카+보쿠

※이누야샤 각색 전국시대 '치정'물





1.

“하~암.”

이른 아침 등굣길에 늘씬한 두 팔이 기지개를 켰다. 부족한 잠에 하품이 절로 나왔지만 아직은 제약 많은 고등학생의 신분이라 지각을 면하려면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쿠로오는 현관을 나와 흙냄새 나는 마당을 걸었다. 그의 집은 요즘의 현대식 건물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는데 집안 대대로 작은 신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작은 신사라고 해도 이 근방에서는 제일 큰 것이라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기는 했다. 깜깜한 시골보다 조금 나은 이 마을에선 쿠로오가 신사 집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마당을 지나 대문으로 나가려면 사이에 있는 신사 건물 하나를 지나야 했다. 본 신사는 집 뒤에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 이쪽 앞 편에 있는 것은 두꺼운 신목 옆에 있는 별채 건물이었다. 별채 건물은 ‘뼈 먹는’ 우물을 위해 지어진 것인데 지금은 완전히 막혀서 들어가면 미미한 곰팡이 냄새만 풍겼다. 우물도 그리 큰 편도 아니라 썩 볼 만한 곳은 못되었다.

쿠로오는 힐끗 별채를 바라봤다. 평소에는 청소 심부름 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곳이지만 오늘따라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아마 학교가기 싫은 심리가 가장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3학년 개학식 날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쿠로오는 갈까 말까 고민하다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곤 여상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에 유난히 눈이 일찍 떠지더라니 이래서였나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니 나무 바닥의 삐걱임 소리가 쿠로오를 반겼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들은 덤이었다. 퀘퀘한 냄새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쿠로오는 계단을 따라 우물이 있는 아래로 내려갔다. 역시 다시 봐도 정말 보잘 것 없는 우물이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신사까지 지어 보호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정정히 신사 지킴이를 하고 계신 할아버지의 말씀으론 요괴의 뼈를 모아 버리던 곳이라고 하는데 요괴라는 말도 웃기고, 애초에 그런 장소라면 왜 진작 없애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괜히 부정타게.

쿠로오는 가만히 우물을 바라보다 이내 실망한 듯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다. 내심 제 헛헛한 마음을 달랠 그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하고.

쿠로오가 반쯤 계단을 올랐을 무렵, 갑자기 뒤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우물이었다. 쿠로오는 갑자기 밝아진 주위에 놀란 듯 뒤편을 쳐다봤다.

그리고 눈부심에 감아버린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정체모를 이(異)공간에 끌려 들어오고 난 뒤였다.

 




2.

“윽..!”

“너..갖고 있구나.. 힘이 넘쳐흘러..!”

쿠로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이상한 괴물에 머리를 잡혔다. 팔이 여섯 개나 되는 상체는 여성의 나신에 아래는 지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기괴한 몸이었다. 쿠로오는 너무 놀라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잡힌 어깨에서 전해지는 압박감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며 그 힘도 장난이 아니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서 구슬을 내놔..!”

괴물은 무언가를 내놓으라며 그 소름끼치는 이빨을 제 배 가까이에 가져갔다. 이대로 있으면 잘근잘근 뜯어 먹힐지도 몰랐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다.

“으아악-!”

쿠로오는 있는 힘을 다해 괴물에게서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다. 살을 에는 공포심만큼 살고 싶다는 강한 본능도 깨어났다. 다리에 경련이 일만큼 전력으로 괴물의 몸을 차올렸다.

“감히 네 놈이..!”

순간 터져 나온 연보라색 빛과 함께 괴물의 몸이 뒤로 밀렸다. 쿠로오를 잡고 있던 팔 한쪽은 뜯겨나가 그의 어깨에 붙어있다 힘없이 떨어졌다. 괴물은 분한 듯 소리를 지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쿠로오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다시 우물 안이었다.

“하아..하아..”

쿠로오는 괴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숨이 가빴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라기보다는 긴장 때문이었다. 꿈이라도 꾼 것인지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쿠로오는 잠시 호흡을 고르며 위를 올려다봤다. 당연히 보여야할 신사의 낡은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폭탄이라도 터져 신사 천장이 날아간 게 아니라면 제가 앉아있는 곳은 전혀 다른 곳이라는 얘기였다.

“아흐.. 힘들어..”

쿠로오는 우물 벽을 타고 자란 넝쿨을 밧줄삼아 낑낑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펼쳐진 숲과 풀밭에 쿠로오는 다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름 모를 풀들이 덕지덕지 자라있긴 해도 신사 안에 있던 우물과 똑같은 것 같은데, 이게 말로만 듣던 평행세계인가 쿠로오는 황당하기 만 상황에 ‘허’하고 웃음이 터졌다.

아. 모르겠다.

더 이상의 생각을 거부하는 뇌에 쿠로오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지나는 사람 하나 없고 태평한 짹짹 소리만 조용히 들려왔다.

‘뭐..바람은 시원하네.’

쿠로오는 의미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리를 옮겼다. 우물 밑을 쳐다봐도 꽉 막혀 있을 뿐이고, 무엇보다 그 이상한 괴물과 다시 만나는 것은 사양이었다. 아직도 등이 축축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니 익숙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보였다. 다른 나무들 사이에서도 우뚝 솟아올라 찾기 가 쉬웠다. 쿠로오의 신사 옆에 있던 오래된 신목이었다. 쿠로오는 나무를 자세히 보기위해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짧아진 교복바지로 드러난 복사뼈에 잡초가 부딪혀 간지러웠다.

사락.

신목 가까이에 도착하자 그 두꺼운 밑동이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몸통부분에는 저만한 남자애 한 명이 매달려 있었는데, 왼쪽 가슴께에 사극에서나 볼법한 화살이 박혀있는 채였다.

쿠로오는 다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미동하나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숨소리 하나도 안나니 죽은 건가 싶었지만 얼굴이 지나치게 편안해보여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잘 보니 머리위에는 묘한 강아지 귀같은 것도 달려있었다.

‘...’

쿠로오는 살금살금 다가가 쫑긋 솟은 남자의 귀를 잡았다.

‘오오..진짠가 이거..’

겁 없는 행동이었지만 남자가 안 움직이고 있으니 이상한 용기가 솟았다. 주물주물 만져보니 짙은 녹색의 귀가 손에 착 감겼다. 나름 온기도 남아있어서 만지기 좋았다. 말랑말랑한 중독성이 있었다.

휘익-탁!

‘..?’

열중해서 귀를 만지고 있던 쿠로오 옆으로 날카로운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어리둥한 것도 잠시 연이어 날아드는 화살에 쿠로오는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몸에 가까이 붙었다. 겨우 괴물을 피해 도망쳐오나 했더니 이번엔 또 화살이었다. 오늘 하루에 몇 번을 목숨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억울했다.

 




3.

“너는 누구냐! 어서 정체를 밝혀라!”

“..저는 그냥 지나가는 학생..”

“첩자인가?”

“어머, 그러고 보니 옷도 묘하구려.”

“요괴가 둔갑한 것일지도..”

“하아..”

정신을 차려보니 쿠로오는 온 몸에 밧줄이 묶인 채 마을 한가운데 잡혀와 있었다. 그를 빙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나마 괴물한테 잡혀온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이없는 상황에 푹푹 한숨이 났다.

“그만. 저리 물러들 서게.”

“아카아시님!”

멀리서 활을 든 젊은 남자 한명이 쿠로오를 향해 걸어왔다. 얼굴이 수려하고 하나로 묶인 머리칼이 길어 여자인가 했더니 다부진 어깨가 틀림없는 남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단정하게 매어 입은 흰 상의와 남색 바지가 눈에 띄었다.

“...”

아카아시라 불린 남자는 아무런 말없이 한 쪽 무릎을 꿇어 쿠로오와 눈높이를 맞췄다. 자세히 관찰당하는 듯한 시선에 쿠로오는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ㅁ..뭐예요. 할 말이 있으면 말을..”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볼멘소리를 내뱉은 쿠로오는 찔끔찔끔 뒤로 엉덩이를 뺐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러웠다.

“..너무 늦었어.”

도망가는 쿠로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는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약간 찌푸려진 미간에 쿠로오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대는.. 날 항상 애타게 해. 그렇게 떠날 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이지 너무해.”

남자는 자기가 할 말만을 뱉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저를 아는 듯한 말투에 쿠로오는 혼란만 가중되어 남자를 쳐다봤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저 남자가 누군지 알 리가 없었다. 뚱딴지 같은 소리였다.

“내 지인이 물의를 일으켰군. 대신 사과하네.”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쿠로오를 저의 지인이라 소개하고 밧줄을 풀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쩔 줄 모르며 쿠로오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왔다. 마을에 대장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일단 내 집으로 가지.”

쿠로오는 남자의 발걸음에 이끌려 얌전히 그의 집까지 따라갔다.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따라는 갔지만 집안에 들어서서도 몸은 여전히 긴장으로 빳빳히 굳은 채였다.

“저기..”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계속 쭈뼛거리던 쿠로오가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남자가 마시라고 준 이름 모를 차는 한 입 대보지도 못하고 그 앞에서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여유 없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 알아요? 아, 아니 이게 아니고..여기가 어디예요?”

남자는 다시 눈썹을 조금 찡긋거린 채 대답 없이 쿠오를 바라봤다. 무언가가 또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게 제가 사실은 길을 잃어버렸는데...”

“...”

“숲에서 괴물한테 쫓겨서 귀를 만지다가 아니, 갑자기 잡혀온 거거든요?”

“나름의 억울한 사정이...!”

“...”

“하하...하.....네.. 하나도 안 궁금하시구나..”

남자가 반응이 없자 쿠로오가 무안한 듯 고개를 돌렸다. 속으로는 벌써 여러 번 쪽팔림에 터져버린 뒤였지만 차마 티는 내지 못하고 애꿎은 아랫입술만 물어뜯었다. 대체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무슨 말이라도 좀..”

“..그렇군.”

꾹 입을 닫고 있던 남자는 미묘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저 혼자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로서는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해주니 그저 황당할 노릇이었다.

“제가 잠시 착각을 했습니다.”

“..네?”

다시 입을 연 남자의 입에선 아까와는 다른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내용도 퍽 정중해서 쿠로오는 순간 다른 사람이 와있는 줄 알았다.

“전에 알던 사람과 많이 닮아 있어서 말입니다. 그만 실례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남자가 꾸벅 목을 숙였다. 절제된 동작에서 곧은 예가 느껴졌다.

“괜찮아요. 그보다 여기가 어딘지..”

“이곳은 동국의 작은 시골마을중 하나입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전쟁이 잦아 가운데 끼어있는 저희는 피해가 많지요.”

“어디요..? 여기 OO 아니예요?”

“OO이라 처음 듣는 지명입니다만.. 이곳 사람이 아니십니까?”

“아니 그게 그러니까..”

하아, 미치겠네. 쿠로오의 입에서 절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남자는 저 나름 더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아직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와도 될까요?”

“편한 대로 하십시오. 대신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마시길.”

결국 쿠로오는 생각을 정리하기위해 혼자 바깥으로 나왔다. 남자의 집은 마을 중심과는 조금 떨어져 있어 한적했는데 꼭 그렇지 않더라도 주변이 논밭투성이라 조용하기는 했다. 작은 시골마을이라던 그의 말이 딱 맞았다.

“하아- 이제 어쩌냐..”

참았던 한숨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사람들의 차림새로 보나 말투로 보나 현대가 아닌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하면 우물과 신목이 그대로 있으니 몇 백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소리가 됐다. 굳이 따지자면 전국시대나 될 것 같았다.

다만 얘기를 들어보니 여기는 ‘요괴’라는 것들도 자주 습격을 해온다는데 전국시대에 요괴라니 그것도 말이 안 됐다. 애초에 요괴라는 것 자체가 있기는 한단 말인가.

‘아..’

머릿속에 아까 쿠로오를 덮쳤던 괴물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자연스레 납득하고 있는 자신이 왠지 짜증났다.

생각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다. 숲이 시작되는 입구였다. 쿠로오는 좀 늦으면 어떠냐며 심술을 부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으니 괜한데 화풀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구슬이 어쩌고..’

투두두...두두두...

쿠로오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사이 숲 안쪽에서 미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지 소리가 커지고 이젠 땅울림도 느껴졌다.

‘이게 무슨...윽!’

“드디어 찾았어..!”

비명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쿠로오가 땅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무언가에게 배를 뜯긴 채 하늘로 솟아오른 뒤였다. 


정말이지 드럽게 아팠다.

 





꽁치빌라 건물주 twitter: @rin_kkong101 /@rin_k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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