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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앜쿨] 우리집 인어가..2부_01

01. 일상



 

 

01. 일상

_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 그제야 좀 실감이 났다. 저도 모르게 아랫배에 손이 갔다.

 

 

 

21.

“켄지!”

“테츠!”

오늘은 마츠카와네 집에 초대를 받은 날이었다. 쿠로오와 후타구치는 요 3년새에 꽤나 친해졌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지 방방 난리가 났다.

“아기는?”

쿠로오가 집들이 선물을 건네며 물었다. 양손에는 아기자기한 아기용품들이 한가득이었다.

“자고 있어.”

“마츠카와씨!”

방에서 나온 마츠카와가 웃는 얼굴로 쿠로오네를 맞았다. 모두가 즐거운 이곳에서 심기가 언짢은 것은 아카아시 한 명 뿐이었다.

“일찍 왔네.”

“일찍 갈겁니다.”

“딱딱하긴. 들어와.”

거실로 들어서자 포근하게 정리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곳곳에 자그마한 장식품과 인형들이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아마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후타쿠치의 솜씨일 터였다.

“마실 것 좀 내올게요.”

후타구치가 다과를 내러 자리를 떴다. 거실에 남은 세 명은 요즘은 뭘하고 지내는지 서로에 대한 간단한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가장 핫한 대화주제는 다름 아닌 마츠카와네 아기에 관한 것이었다.

“귀엽지?”

“흐아...완전 귀여워. 케이지 이것봐.”

마츠카와가 핸드폰 가득한 아기의 사진을 보여주자 쿠로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관심없는 척 외투를 벗던 아카아시도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치? 니로랑 완전 똑같아.”

“그래도 머리카락은 마츠카와씨 닮았어요.”

“그건 그래. 좋은 건지 안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마츠카와 쑥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확실히 사진 속의 아이는 까만 곱슬머리가 마츠카와를 쏙 빼닮아 있었다.

“잘 어울려요. 누구 딸인데.”

후타구치가 마실 것이 담긴 트레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뿌듯하게 말하는 모습이 벌써부터 팔불출의 끼가 보였다.

“아..따뜻하다.”

후타구치가 내어온 차는 따뜻한 유자차였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1월에 딱 먹기 좋았다. 같이 가지고 온 과자들도 상큼한 유자의 향과 잘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아마 조금 달다는 점만 빼면 더 완벽했을 것이었다.

“렌 아직 말은 안하지?”

쿠로오가 과자를 집어 먹으며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 준비를 했다. 렌은 마츠카와네 아기의 이름이었는데, 한 번 아이 얘기를 시작하면 최소 두 시간은 훌쩍이었다.

“말하려면 멀었어. 그래도 요즘에는 ‘바바’ 옹알이하는데 잇세이가 엄청 좋아해.”

“..켄지도 엄청 좋아해놓고.”

마츠카와가 조금 억울하다는 듯 말을 붙였다.

“그건 그렇지만.. 잇세이는 오이카와씨한테 자랑했다가 차단당했잖아요.”

“그걸 어떻게.. 메시지 봤어?”

“저번에 술먹고 보여줬잖아요.”

“...”

쎄한 후타구치의 표정에 마츠카와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술 때문에 마츠카와가 실수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후타구치는 그런 마츠카와를 두고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얼마전엔 혼자 뒤집기를 했는데..”

“흐으..사진 좀...”

쿠로오와 후타구치의 육아에 대한 수다는 늦도록 이어졌다. 이런이런 점들이 사랑스럽다던지 어디가 너무 귀엽다던지 렌에 대한 자랑이 대부분이었다.

아카아시와 마츠카와는 그 옆에서 제 짝들을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꼬물거리는 아기보다도 가장 사랑스러운 이들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나온김에 장 봐서 들어갈까?”

아카아시가 쿠로오의 차가워진 손을 제 외투 주머니에 잡아 넣으며 말했다. 낮잠을 즐기던 렌이 깨어나자 쿠로오네는 그제야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깨닫고 급히 마츠카와네를 나섰다.

“응. 과자 사도 돼?”

“몇 개는. 몸에 안 좋으니까 너무 많이 사진 말고.”

쿠로오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카아시는 바로 마트로 차를 몰았다. 마츠카와네 집은 시내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케이지, 이거 둘다 사면 안돼?”

“하나만 사. 다른 것도 샀잖아.”

“그치만 이건 새로 나온 맛이라구..”

“안돼. 요새 과자 너무 많이 먹었어.”

빠르게 주차를 마치고 바로 식품코너로 내려온 둘은 저녁거리며 앞으로 몇 일동안 먹을 식재료들을 차곡차곡 카트에 쌓았다. 작은 실랑이도 몇 번 있긴 했지만 결국 져주는 쪽은 정해져있었다.

“한 번만..응? 케이지-”

“..알았어. 대신 과일도 먹어야 돼.”

“당연하지!”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어둑어둑해져가는 하늘에 저녁은 간단히 외식을 하기로 했다. 집에 가서 만들어 먹기에는 배고픔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메뉴는 뜨끈한 버섯 전골. 양도 푸짐하고 담백한 맛이 매력적이라 아카아시와 쿠로오가 종종 들르는 단골집이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을 한 입 뜨고나니 꽝꽝 얼었던 추위가 싹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22.

똑똑.

“응, 들어와.”

아카아시가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성큼 다가온 마감기간에 빠듯하게 퇴고를 하려니 두 눈에 화하게 열이 올랐다.

“무슨 일이야?”

문을 열고 들어온 쿠로오가 쭈볏쭈뼛 아카아시의 무릎에 가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감아오는 팔에 쿠로오도 제 팔을 뻗어 마주 안았다.

‘케이지, 역시 피곤해보여..’

거뭇해진 눈아래가 아카아시의 줄어든 수면상태를 대변했다. 침실에 먼저 누워있으면 요며칠은 항상 아카아시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텅 비어있는 옆자리에 그가 또 밤을 샜구나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밥도 제때 챙겨먹지 못하는데 마음같아선 꼬박꼬박 잠이라도 잘 재웠으면 했지만 일이 바쁘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요리나 청소같은 자잘한 집안일 외에는 쿠로오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카아시의 고통을 뚝 떼어내 나눠가질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조금만 자면 안돼..? 얼굴이 까칠까칠해..”

쿠로오가 속상한 듯 아카아시의 얼굴을 살살 어루만졌다. 가슴 끝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올라왔지만 아카아시가 또 걱정할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꾹하고 눌러 삼켰다. 그나마 조금은 감정을 숨기는 것이 나아져서 다행이었다.

“졸리면 먼저 자. 기다리지 말고.”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지. 담담히 말을 내뱉는 아카아시의 목소리가 조금 잠겨있었다. 본인이 더 피곤해 있는 와중에도 팽팽 놀고 있는 제 걱정이었다.

“..케이지, 어제도 거의 못잤잖아.”

“아직 일이 안끝나서.”

아카아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쿠로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자르지 않고 여전히 긴 머리카락이 사르르 흔들거렸다.

“...”

언제쯤 끝나, 얼마나 남았어, 그냥 하지마, 나랑 같이 자주면 안돼, 이불이 너무 차가워.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지만 죄다 철없는 소리들뿐이라 쿠로오는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그저 빨리 일이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쿠로오는 이번에도 서늘한 침대에서 눈을 떴다. 어쩔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입안이 좀 씁쓸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0시가 넘어있었다. 어제도 아카아시를 기다린다고 새벽에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카아시는 자러 들어오지 못했다.

쿠로오는 살금살금 서재로 가 문을 열었다. 끼익 소리가 날까 빼꼼 눈만 내밀어보니 책상위에서 쓰러지듯 잠이 든 아카아시가 보였다. 역시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한들 이렇게 며칠을 밤을 샐 수는 없었다. 쿠로오는 침실에서 담요를 가져와 아카아시의 어깨위에 덮어주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깨지않는 것을 보니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서재에 불을 끄고 거실로 내려왔다. 늦은 아침이지만 간단한 토스트를 챙겨먹고 아카아시의 몫도 그릇에 담아 부엌 식탁위에 놓아두었다. 간단한 설거지후에 쿠로오는 차키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이제 슬슬 먹을 게 떨어진 터라 장을 보러가야했다.

아직도 추운 바깥공기에 옷깃을 꼼꼼히 여미고, 차에 타자마자 난방을 켰다. 한가할 때는 아카아시가 미리 덥혀둬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의 바쁨이 이런 사소한데서도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맑은 하늘은 드라이브를 하기에도 퍽 좋아보였다. 덕분에 그나마도 지루하지 않게 차를 몰았다. 시내에 도착하자 주말은 주말인지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쿠로오는 마트 입구 근처에 차를 대놓고 능숙하게 카트를 뽑아 안으로 들어갔다. 열 번도 훨씬 넘게 왔던 단골마트였기에 이제 가장 좋아하는 꽁치가 있는 생선코너 쯤이야 눈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식품코너의 아주머니들과 친해진 것은 덤이었다. 그간의 노력 덕분이었다.

지난 3년간은 쿠로오에게 있어도, 아카아시에게 있어도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해였다. 특히 쿠로오에게는 공부해야할 것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도움으로 조금씩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그를 위해 제일 먼저 배운 것은 ‘글쓰기’였다. 말은 익숙해도 글자에 대해서는 새하얀 백지 상태나 다름 없었던 쿠로오에게 아카아시는 차근차근 글자를 알려주었다. 쿠로오가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이제는 간단한 소설책을 읽는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음으로 배운 것은 요리를 비롯한 자잘한 집안일. 아카아시가 바쁘지 않을 때는 대부분 그가 도맡아서 처리했지만 새 책의 집필이 시작되고 생활이 조금 바빠지면서 쿠로오가 발벗고 나서게 됐다. 원래도 아무것도 안하고 지내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커서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다만 아직 아카아시만큼의 요리실력은 되지 못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그 밖에도 핸드폰 사용법이라던지 여러 가지 배운 것은 많았지만 딱 하나 아카아시가 아닌 다른 이에게 배운 것이 있었다. 바로 ‘운전’이었다. 여전히 드라마를 비롯한 TV애청자인 쿠로오는 어느 날 한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을 보더니 운전은 절대 아카아시에게 배우지 않으리라 선언했다. 연인사이에 운전을 가르쳐주면 무조건 싸우게 된다는 말때문이었다.

그래서 쿠로오의 운전 선생님을 맡게 된 것은 다름아닌 마츠카와였다. 연락을 받은 마츠카와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다. 뭐 아카아시의 만류룰 가장한 애원이 좀 있긴 했지만 꿋꿋이 버텨낸 쿠로오였다. 아카아시와 싸우기는 싫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싸우지도 않고 자격증도 얻었으니 잘 된 일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혼자 장도 보러 갈 수 있으니 서로서로 좋았다.

쿠로오는 대강 필요한 것들을 다 담은 후, 혹시 빠뜨린 것이 있나 적어온 메모를 살폈다.

‘계란, 양파, 꽁치, 유채나물.. 아, 사과 안샀다.’

카트를 뒤적거려보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 사과에 쿠로오는 다시 과일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과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카아시가 걱정할테니 사기는 사야 했다. 그나마 사과가 제일 무난한 편이었다.

“어이-”

돌돌 카트를 굴리던 쿠로오의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어깨를 툭 치는 큰 손이 느껴졌다. 마츠카와였다.

“마츠카와씨?”

“오랜만. 그때보고 안 봤지?”

“네. 렌은 잘 있어요?”

“잘 있지. 안아달라고 자꾸 칭얼거려서 켄지가 좀 힘들어하긴해.”

확실히 오랜만이었다. 반가움에 두 사람 모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마츠카와는 저번 1월달 집들이 때 보고 근 두 달만이었다.

“근데 왜 혼자야? 아카아시는?”

“자요. 요새 좀 무리를 해서.”

마츠카와의 질문에 쿠로오의 얼굴이 금세 또 시무룩해졌다.

“하긴.. 그러고보니 슬슬 마감때네.”

“너무 안 자서 큰일이예요. 아마 지금도 몇 시간 못자고 일어났을걸요.”

“내버려둬. 아카아신데 자기 몸상태정도야 알아서 잘하겠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쳐진 쿠로오의 표정에 마츠카와가 걱정하지 말라며 심심찮은 위로를 건넸다. 아카아시의 똑부러지는 성격에 그 정도 관리쯤 못할 리가 없었다. 되려 쿠로오의 앞이라고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건 아닌지 의심스런 마츠카와였다.

“마츠카와씨는 왜 혼자예요?”

“켄지가 시켜서 장보러 나왔지. 아기 때문에 같이 못오니까. 살 건 다 사서 이제 가려고.”

“저 사과만 사면 되니까 같이 나가요.”

“그래.”

쿠로오가 사과를 집어오자 둘은 바로 계산대로 향했다. 아카아시가 장볼 때 쓰라고 준 카드로 당당히 계산을 마치고 근처에 마련된 박스포장대에서 트렁크에 실을 짐을 쌌다. 물도 한 통 있고, 이것저것 산게 많아서 그런지 카트가 무거웠다.

마츠카와의 차가 주차된 곳도 쿠로오가 차를 댄 곳의 주변이었다. 마츠카와는 짐싣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제 카트를 끌고 쿠로오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혼자해도 괜찮았지만 도와준다기에 굳이 말리진 않았다. 아침에 빵 하나밖에 못 먹어서 그런지 조금 지쳐버렸다.

“많이도 샀다. 이러니까 무겁지. 이 정도 사면 며칠이나..테츠?”

쿠로오가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갑작스레 들려온 이명과 함께 머리가 띵해지더니 무섭도록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어지러웠다.

“테츠, 괜찮아?”

마츠카와가 쓰러질 듯한 쿠로오의 어깨를 받혀올렸다. 방금까지만해도 멀쩡하더니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갑자기 왜 그래? 머리 아파?”

쿠로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동작에도 뇌가 움직이는 기분에 이제 속까지 울렁거렸다.

“정신..차려ㅂ. 바로 병원..테..!”

마츠카와의 고함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까맣게 암전되는 시야와 함께 쿠로오의 몸이 풀썩하고 내려앉았다.

쿠로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당연하게도 병실 침대위였다. 쎄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일어났어?”

제일 먼저 말을 걸어온 이는 마츠카와였다. 쿠로오가 쓰러지고 나서 병원으로 옮기는것부터 진료, 자잘한 뒤처리까지 그가 도맡아 해주었다.

“지금 몇 시예요? 케이지한테 연락..”

“눈 뜨자마자 아카아시냐.. 지금 3시고, 아카아시한테는 우리집에서 놀다간다고 해놨어.”

“아..다행이다.”

마츠카와가 어쩔수 없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네가 연락하지 말라고 한 건 기억도 안나지?”

“그런거 같기도하고..아닌 것 같기도 하고..”

“됐어. 몸은 좀 괜찮아? 피곤하면 더 자는게 좋아.”

“괜찮아요. 귀찮으셨을텐데 감사합니다.”

쿠로오가 꾸벅 인사를 했다. 한숨 자고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갑자기 왜 그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인사해도 안 보내줄건데. 가려면 저거 다 맞고 가.”

마츠카와가 걸려있는 수액통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3분의 1정도가 남아있었다.

“언제 또.. 진짜 괜찮은데.”

“..전혀 안 괜찮거든? 아카아시가 잠 못자서 걱정이라더니 네가 더 문제야.”

눈치가 빠른 줄 알았더니. 마츠카와는 작게 궁시렁거리더니 쯧쯧 혀를 찼다. 쿠로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그 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잠도 안재우고 뭐하는 거야..순 말투만 차가워서..눈치도 없고...”

“누구 얘기얘요?”

“있어. 나보다 한 살 어린애.”

마츠카와가 휘휘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보다 요새 잠은 얼마나 못 잔거야? 밥은 제대로 챙겨먹고?”

“좀 불규칙적이긴한데..한 3-4시간? 밥은 케이지가 잘 못 챙겨 먹어서..”

“에휴..그럴줄 알았다. 스트레스도 엄청 쌓였겠네. 앞으론 절대 그러면 안돼. 잠도 푹 자고, 밥 거르지 말고.”

“..왜요? 저 어디 아파요?”

쿠로오가 짐짓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평균 3-4시간이지 1시간 자고 일어난 적도 많은데 큰일이면 어쩌나 싶었다. 저가 아프면 아카아시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아니. 딱히 아픈건 아니고..”

말을 하는 마츠카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럼..?”

 

“아기 생겨서 그래. 축하해.”

 




23.

“조심해서가.”

“네, 다음에 봬요.”

쿠로오는 마츠카와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몸을 실었다. 운전대를 손에 잡는 쿠로오의 표정이 싱글벙글이었다. 뜻밖의 기쁜 소식에 절로 웃음이 났다.

‘..네? 방금 뭐라고..’

‘아기, 가진거, 축하한다고.’

‘세상에..’

병실에서 그 소식을 처음 들은 쿠로오는 너무 놀라서 제대로 웃지도 못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 그제야 좀 실감이 났다. 저도 모르게 아랫배에 손이갔다. 줄곧 바랬던 아이소식에 기쁘지 않을리가 없었다. 아카아시에게도 어서 이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다.

쿠로오의 옆, 그러니까 조수석에는 임신테스트기 두 개가 놓여있었다. 의사인 마츠카와에게서 확답을 들은 터라 필요치 않은 것이었지만 아카아시가 깜짝 놀라도록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사용방법도 확실히 알아왔으니 문제는 없었다.

다만 지금은 아카아시가 바쁜 시기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던 쿠로오는 아카아시에게는 나중에 말하는게 좋을 것 같아 서프라이즈의 시기를 살짝 뒤로 미뤘다. 입이 근질근질하긴 할테지만 완벽한 이벤트를 위해 그정도쯤이야 충분히 감수할 의향이 있었다.

마츠카와의 말로는 곧 일이 끝날 거라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다. 환하게 웃어줄 아카아시의 얼굴이 얼른 보고싶었다.

“며칠만 있으면 끝날거 같아.”

“진짜?”

“응. 다 끝나면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마츠카와가 알려준 대로 아카아시의 일은 점차 마무리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더 힘들어 하긴 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끝이 났다. 지난 두 달이 무색하리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드디어 휴식이었다.

아카아시는 제일 먼저 부족했던 잠을 몰아서 해결했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이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아카아시가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는 사이, 쿠로오는 작은 상자안에 넣어둔 테스트기를 보며 저녁을 기다렸다. 아카아시가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고 했기에 그 때 보여주려고 잔뜩 벼르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Rrrr..Rrrr..

서재에서 갑작스레 벨소리가 울렸다. 아카아시의 핸드폰이었다. 숙면중인 아카아시를 대신해 쿠로오가 들어가 전화를 확인했다. 핸드폰 화면에는 ‘집’이라는 딱 한 글자가 써져있었다.

쿠로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집이라면 지금 저가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인데 이 집에는 전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집은 아카아시의 친가일 가능성이 컸다. 생각해보니 그에게서 가족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

쿠로오는 어쩐지 받기가 곤란해 벨소리를 무음으로만 바꿔놓고 전화가 끊기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전화가 끊어져도 계속해서 다시 걸려오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아카아시를 흔들어 깨웠다.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건지도 몰랐다.

“아카아시. 집에서 전화왔어.”

“..집?”

단잠에 취해있던 아카아시는 집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인상을 찡그렸다. 쿠로오에게서 제 전화기를 받아들고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이내 체념한 듯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뭘 하길래 이렇게 전화를 안받니? 내가 이렇게까지 통화를 해야겠어?’

“..자느라 못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잠을 자? 너는 태평해서 좋겠구나. 보나마나 밤까지 그 애랑..’

상대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도 들려왔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았느냐 채근하는 것 같았는데 다른 소리도 여럿 들려왔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내용임은 확실했다.

“그 애요? 설마..사람 붙이셨어요?”

‘새삼스럽게 뭘 그런걸 묻니? 못 본 새 머리가 더 안좋아졌구나, 케이지.’

“하아..”

아카아시의 표정에 갈수록 예민한 날이 섰다.

“케이지, 무슨 일..”

‘..아니 이게 무슨 소리니? 지금 같이 있니? 그래?’

“..쿠로오 잠깐만.”

끄덕. 아카아시가 작은 목소리로 자리를 비켜줄 것을 부탁했다. 겨우 얼굴이 풀렸었는데 다시 퀭해진 듯한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다.

‘..같이 산다더니 정말 눈에 봬는 게..’

“..그만 좀....세요.”

조금은 격양된 아카아시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한참동안 통화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아카아시는 급히 일이 생겼다며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시내도 아니고 훨씬 먼 곳에 일이 생겼다고 했다. 하루 이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쿠로오는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안그래도 피곤해보이는 아카아시의 모습에 그냥 일찍 오라며 배웅만 해주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도 혼자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2부는 이번 한 편만 올립니다:)



꽁치빌라 건물주 twitter: @rin_kkong101 /@rin_k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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