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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앜쿨] 우리집 인어가.. 1부 03-2

03. 고백


※약 4,500자 분량.





12.

"..."

돌아가는 차안에는 축축한 정적이 맴돌았다. 아카아시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지만 미미하게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증거였다.

쿠로오는 바로 옆 조수석에 앉아 손가락 하나도 꼼지락 대지 못하고 굳어있었다. 푹 숙여진 고개가 얼마나 풀이 죽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신나기만 했던 드라이브는 이제 긴장으로 가득 찼다. 아까 먹었던 과자들이 체했는지 속도 울렁거렸다. 뱅글뱅글 굽어지는 산길에 커브를 돌 때마다 끈적한 식은땀이 새어나왔다. 늘 자유롭고 타인과 부딪힐 일없이 혼자로 살아오다 처음이하는 숨막히는 갈등상황이란 쿠로오에겐 무척이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까지도 아카아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쿠로오는 그래서 더 안절부절했다. 차라리 왜그랬냐고 꾸짖기라도하면 제대로 사과라도 할 수 있을텐데 말을 걸면 또 싸늘한 눈초리를 마주쳐야 할 것 같아 더럭 겁부터 났다. 살금살금 그 뒤를 따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자 아카아시의 발걸음이 뚝하고 멈췄다. 쿠로오의 몸도 따라서 흠칫했다.

“...”

또 다시 잠시간의 정적이 이어지고 이번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아카아시의 쪽이었다.

“쿠로오.”

“응?”

“잠깐 전화하고 올테니까 여기 앉아있어.”

아카아시는 딱 제 할 말만을 마치고 성큼 2층으로 올라갔다. 예쁘다해주었던 얼굴 한 번조차 쳐다봐주지도 않았다.

‘아카아시 많이 화났나? 내가 약속 못지켜서..? 어떻게 해야되지?’

거실 소파에 홀로 남은 쿠로오는 초조함에 둥글게 몸을 말았다. 턱 바로 아래까지 무릎이 접혀올라가 혼란스런 얼굴을 파묻고 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화장실 가지말걸.. 과자도 너무 많이 먹었어.. 그래서 더 화났나? ..그래도 핫초코는 맛있었는데..’

쿠로오는 이리저리 머릿속을 떠도는 말들을 잡아다가 되는대로 생각했다. 저를 찾았을 아카아시에게 미안한 와중에도 핫초코가 맛있었어서 왠지 더 서러웠다. 아직도 입안에서 단내가 났다.

‘됐어..! 그냥.. 그냥 이제 그만 만나자. 지쳤어..’

쓸데없는 생각들로 머리가 하얗게 채워져갈 무렵 문득 쿠로오의 머릿속에 한 마디 대사가 떠올랐다. 아까 집을 나서기 전 보았던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지금.. 나랑 헤어지자는 거예요..?“

‘그래..’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가 있어?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면 안되잖아요..’

여주인공의 울먹거리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매정한 남자의 모습에 상처받은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응? 내가 잘못했어요..’

‘그만해.. 그만하자.. 지금 끝내는 게 서로를 위해 더 좋은 길이야. 짐은 천천히 빼도록 해. 내가 안 들어갈테니까.’

‘선생님..! 정말 이렇게까지..!’

‘조심히 들어가라.’

남자가 먼저 자리를 뜨고 여주인공이 혼자남아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이 났었다. 다음화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둘은 일단 헤어졌다. 그것도 여자의 사소한 실수 하나로.

드라마의 내용을 떠올린 쿠로오는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여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자신도 아카아시의 말을 어겼으니 버림받을 지도 몰랐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흡..”

결국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이제 막 ‘짝’이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헤어질 수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아카아시가 저를 내친다면 얘기가 달랐다. 쿠로오만 싫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선택권은 전적으로 아카아시에게 있었다.

“..흡..히끅..으읍...”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혹시라도 들을까봐 큰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꽉 막힌 울음소리가 더욱 안타깝게 들렸다. 미움받고싶지 않았다. 울면 안됐다. 아카아시가 돌아왔을 때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저를 더 싫어하게 될지도 몰랐다.

“흐으...흐읍..”

하지만 울음을 그치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목구명이 따가웠다. 눈도 조금씩 화끈거렸다. 꾸역꾸역 울음을 삼키느라 꽉 다물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안그래도 불편했던 속이 훅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터벅터벅.

아직 세수는 커녕 울음을 그치지도 못했는데 계단 쪽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카아시가 통화를 마치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쿠로오는 그 소리에 귀가 쫑긋했지만 푹숙인 고개를 들 수는 없었다. 이미 눈물범벅인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콧물도 찔끔 나온 것 같았다.

“쿠로오.”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아카아시가 건조한 목소리로 쿠로오를 불렀다. 쿠로오의 몸이 한계까지 딱딱하게 굳었다.

“고개 들어봐.”

“...”

쿠로오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못생긴 얼굴을 보여줄 순 없었다. 여주인공처럼 울었다는 것을 들켰다간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몰랐다. 쿠로오는 아예 두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쿠로오. 지금 뭐하는 거야.”

“...”

“쿠로오.”

귀를 세게 막았는데도 아카아시의 차가운 목소리는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더 세게 막아봐도 바로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아..”

쿠로오가 꼼짝도 않고 있자 곧 아카아시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말하는 것보다도 더 큰 실망감을 표현하는 소리에 쿠로오는 또 한 번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잡아 눌러야 했다. 오늘 하루새에 눈물을 몇 번을 참아야하는지 모르겠다. 아랫입술이 아팠다. 그래도 참지 못한 눈물방울이 흘러 무릎팍을 적셨다.

“읍..히윽..”

터지기 직전의 서러움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쿠로오의 어깨가 간헐적으로 떨렸다.

“..쿠로오 울어?”

떨고있는 모습을 본 아카아시는 그제야 쿠로오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말을 건넸다.

“..고개 들어봐.”

“...”

“얼른.”

아카아시의 길쭉한 손이 쿠로오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쌌다. 푹 숙인채 끝까지 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조금 힘을 실어 잡아올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빨갛게 부어오른 눈두덩이가 제일 먼저 그를 반겼다.

“쿠로오. 왜 울어 또.”

“흐으..하으..읍....”

“그만 울어. 눈 더 빨개질라.”

아카아시가 그렁그렁 고여있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쿠로오의 예상과 달리 평소처럼 다정하게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흐으으...아카..아시..히윽..”

하지만 달래기에는 역효과였다.

“흐윽..내가 잘못했어..흑...하읍..”

그 다정함에 더 울음이 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카아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쿠로오를 안아 등을 쓸어주었다. 참았던 서러움이 펑하고 터져버렸다.

“히끅..나 싫어하지마..아카아시..흐으으..”

“..안 싫어해. 내가 어떻게 싫어해.. 많이 무서웠어?”

아카아시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쿠로오가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되서 그랬어. 미안해.”

“흐윽..나도..흡..나도..잘..하윽..”

“응.. 말 안해도 돼.”

 



13.

“이제 다 울었어? 눈이 또..”

“세수하고 올래..”

어느 정도 울음이 그치자 쿠로오는 부어오른 눈을 가라앉히려 화장실로 향했다. 시원한 물로 한 차례 씻어내니 화끈거림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이리 와.”

아카아시가 작게 팔을 벌리자 쿠로오가 종종 걸어와 품안에 쏙 안겼다. 긴 머리카락이 단단한 어깨에 부벼져 이리저리 헝클어졌다.

“쿠로오. 아까..”

아카아시가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원래라면 가장 먼저 물어봤을 것이지만 쿠로오가 대뜸 눈물을 터뜨린 덕에 타이밍이 조금 늦어졌다.

“그 사람이랑 무슨 얘기했어?”

“마츠카와형이랑..?”

아직은 흐느낌이 남아있는 목소리에 미미한 흔들림이 있었다.

“응. 그 사람이 이상한 짓..한건 아니지?”

“..그냥 먹을 거, 과자줬어. 핫초코도 주고. 그리고.. 마츠카와형네에도 나랑 똑같은 애 있대.”

“..그래?”

“응. 이름이 ‘니로’랬어. 근데 아직 엉덩이에 ‘그게’ 안 생겼대.”

“..그랬구나.”

머리를 쓰다듬던 아카아시의 손이 왜인지 순간 움찔했다.

“다른 얘기는 안했어?”

“...”

“..쿠로오?”

아카아시의 질문에 쿠로오는 잠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용히 망설이던 입을 떼었다. 아카아시의 허리를 껴안은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나는 아카아시가.. 꽁치보다 좋다고 했어.."

 



+그 대화

“진짜예요. 여기 엉덩이 위에 있다니까!”

쿠로오가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의문의 뿌듯함도 섞여있었다.

“흐음..그럼 나도 니로 엉덩이에 생기는 거 보고싶네.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마츠카와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말했다. 눈이 허공을 향해있는 걸 보니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바로 보여줬는데.. 니로씨도 생기면 바로 보여줄 거예요.”

“그래, 나중에 보면 말해줄게. 꼭 다시 와. 아, 시간이.. 너무 늦으면 걱정하려나.”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끗 쳐다본 마츠카와가 말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흘러있었다.

“어..벌써 끝났으면 안되는데.. 아카아시랑 약속..”

“괜찮아, 괜찮아. 아직 멀었어.”

마츠카와가 늦었다는 말에 금세 안절부절해하는 쿠로오를 안심시켰다. 쿠로오가 지극히도 아카아시를 따른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너무 성격이 차가워 보이던데.. 그렇게 아카아시가 좋아?”

“..네.”

“음..아카아시가 좋아, 형이 좋아? 과자 더 줄게.”

“아카아시요.”

“단호하네. 꽁치보다도?”

“네에..”

“큭큭, 쿠로오는 순수해서 귀엽네-”






_continued

 


꽁치빌라 건물주 twitter: @rin_kkong 에스크&리퀘: asked.kr/krn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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