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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앜쿨] 우리집 인어가.. 1부 01

01. 첫 만남


※연령반전 :아카아시(30), 쿠로오(24)

※약 8,700자 분량.





우리집 인어가 좋아하는 꽁치를 못 먹게 된 이유에 관하여

아카아시 케이지×쿠로오 테츠로






01. 첫 만남

_누가보기라도 했다면 미쳤다고 할게 분명했다.

 

 

 

1.

아카아시네 집은 로망의 하얀 2층집이다.

한적한 바닷가 옆에 별장처럼 자리하고 있어서 주변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그저 산과 바다, 말그대로 자연 속의 집이었다. 젊은 나이에 너무 지루한 생활인지도 모르겠지만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아카아시에게는 그런대로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울타리 없는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은 부엌과 거실로 식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크게 나눠져 있었다. 더 안쪽으로는 욕실과 방 두 개가 위치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창고이고, 나머지 하나는 텅 비어있다. 아카아시 혼자 살기에는 충분히 넓은 집이니 만큼 사용하지 않는 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은 휑한 1층과 달리 2층은 아카아시의 주 생활공간이었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카아시는 2층에 있던 방 두 개를 터 작업실 겸 서재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다.

서재를 나오면 바로 옆으로는 아카아시의 침실이 있었다. 지금 아카아시가 열심히 자고 있는 곳이었다. 어젯밤 아카아시는 새 책의 마감을 마치고 늦은 새벽이 되서야 잠이 들었다. 되도록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하는 그였지만 마감이 코앞에 와있었던 만큼 요며칠은 어느정도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감이 끝난 당분간은 편히 쉴 수 있을테니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오늘은 답지않은 늦잠까지 푹 즐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카아시가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는 사이, 시계바늘은 쉬지않고 돌아 벌써 오전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30분 정도가 더 흘러 시간이 12시에 가까오자 그제서야 굳게 닫혀있던 아카아시의 눈꺼풀이 슬그머니 떠졌다. 정말 간만에 잠다운 잠을 잔 날이었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아카아시의 얼굴이 퍽 개운해 보였다.

아카아시는 방안에 딸린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단촐한 팬티차림에서 적당한 실내복을 끼워입은 후 1층으로 내려갔다. 방을 나와서 2층 중앙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거실과 연결되있는 구조였다.

아직은 비몽사몽한 정신에 아카아시는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자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까만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한쪽에서는 거름종이를 꺼내 커피를 내릴 준비를 했다. 커피 만드는 것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시중에 나와있는 커피믹스는 좋아하지 않았기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고플때면 곧잘 이렇게 내려 마시곤 했다.

물이 다 끓어오르자 곧 집안에 은은한 커피향이 퍼져나갔다. 아카아시는 완성된 커피를 들고 거실 소파에 가 앉았다. 여유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어제까지 힘들게 작업을 했으니 오늘 하루쯤은 게으르게 보내도 될 것 같았다.

‘리모컨을 어디 뒀더라..’

아카아시는 찾아 거실 여 리모컨을기저기를 살폈다. TV에는 별로 취미가 없다보니 오랜만에 한 번 보려니까 리모컨을 어디다 놔두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창 소파 위를 뒤지던 아카아시는 문득 눈을 돌려 창문쪽을 바라봤다. 창문 전체에 꼼꼼하게 쳐져있는 암막커튼 덕에 거실이 너무 어둡게 느껴진 탓이다. 아카아시는 성큼 창문쪽으로 몸을 돌려 커튼을 손에 쥐었다. 아카아시네 거실은 한쪽 면이 통유리였기 때문에 커튼만 걷어두면 오후에는 햇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아마 따로 불을 켜지 않아도 괜찮을 터였다.

휙-

아카아시가 남색 암막커튼을 걷어내자 거실로 환한 태양빛이 파고들었다. 조금은 깜깜하게 느껴졌던 거실이 순식간에 밝게 차올랐다. 이거라면 행방불명이된 리모컨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족스런 효과였다.

쿵!

아마 아카아시가 놀라 뒤로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더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2.

아카아시는 드물게 놀란 표정을 하고 바닥에 앉아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넘어져 있었다. 반대편 커튼 한쪽을 마저 걷어내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창문 밖 존재에 시선을 빼앗겨버린 탓이다. 덕분에 멀쩡하던 스텝이 꼬였으니 그 후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게 뭐야..’

아카아시는 놀람과 의아함, 그 중간 어디쯤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표정변화가 적은 탓에 미미한 차이이기는 했지만 평소의 차분한 표정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런 외딴 곳에 ‘사람’이라니 궁금할 만도 했다.

창문 밖에 서 있는 남자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양손을 유리에 붙인채 아카아시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입고있는 옷이라곤 사우나용 분홍 반팔티 하나가 전부였는데, 심지어 사이즈도 맞지 않아 아무것도 입지않은 아래가 훤히 보였다. 이 추운 초겨울 날에 누가 보기라도 했다면 미쳤다고 할게 분명했다. 뭐 수줍게 덜렁거리는 아래 탓에 굳이 겨울날이 아니더라도 변태소리를 들을 이유는 충분해 보였지만 말이다.

충격에 잠시 굳어있던 아카아시는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의 남자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대로 추운 바깥에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냥 무시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카아시가 한 번 걷었던 커튼을 다시 쳐버릴 만큼 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한차례 작게 한숨을 내쉰 아카아시는 뒤를 돌아 소파에 놓여있던 담요 한 장을 집어들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통유리라 열고 닫기가 불가능하니 직접 나가서 데리고 오는 수 밖에 없었다.

아카아시는 그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 보고있는 남자를 담요로 칭칭 감아 집안으로 끌고 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밖에 서 있었던 건지 온몸이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 덮어준 담요위로도 스멀스멀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사소한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집안을 구경하느라 두 눈동자만 데굴데굴 구르기 바빴다.

“잠깐 여기 앉아 있어요. 따뜻한 차라도 한 잔 갖다줄테니까. 핫초코정도면 괜찮죠?”

아카아시는 남자를 소파위에 앉혀두고 저는 부엌으로 향했다. 얼마남지 않은 우유를 탈탈 털어 따뜻하게 데우고, 진한 초콜릿 가루를 타 여러번 저었다. 생각보다 잘 녹지 않아서 다 섞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요.”

아카아시는 핫초코가 담긴 머그컵을 남자 앞에 내려놓고 저도 그 맞은 편에 가 앉았다. 소파 앞의 작은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앉은 채였다. 남자는 아카아시가 커피를 마시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조심스레 제 앞의 핫초코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한 입 홀짝여보더니 아직 많이 뜨거운지 깜짝 놀라 입을 떼고 불만스런 눈길로 아카아시를 쳐다봤다. 빨개진 혀가 비죽 튀어나왔다.

“그러게 천천히 마시라니까. 식게 놔두고 과자라도 먹어요.”

아카아시는 그런 남자에게 같이 가져온 과자 접시를 밀어주었다. 남자는 조금 찡그린 듯한 표정으로 접시를 쳐다보더니 이내 작은 비스켓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도독 오도독.

입안에서 비스켓이 부서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부드러운 과자는 아니다보니 둘뿐인 거실에서는 꽤나 큰 소리로 다가왔다. 남자는 비스켓이 나름 마음에 든 듯 접시에 담겨있던 다른 종류의 과자들도 해치우기 시작했다. 작은 입으로 열심히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배가 고팠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점심때라 그럴만도 했다.

아카아시는 남자가 과자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 그 모습을 관찰했다. 평소 남의 일에 무신경한 아카아시였지만 눈 앞의 남자에게는 조금 관심이 갔다. 나이도 꽤 어려보이는데 무슨 사정이 있기에 이런 꼴로 돌아다니는지 이상함과 동시에 측은함도 들었다. 말간 피부에 흙먼지가 덕지덕지 묻어있어 더욱 그러했다. 더구나 전체적으로 마른 체형인 덕에 더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키도 작은 편이 아니라 더 말라보이는 것 같았다.

남자는 접시에 담겨있던 과자를 다 먹고나자 다시 핫초코가 든 머그컵을 집어들었다. 과자 부스러기가 잔뜩 묻은 입가에 컵을 가져다 대보더니 온도가 맞는지 조심스레 핫초코를 마시기 시작했다. 먹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 핫초코도 입맛에 맞는 듯 했다. 두 번째 입을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이미 컵의 절반가량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남자가 마지막 한 모금까지 해치우고 나자 아카아시도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고 눈을 마주쳤다. 만복스럽게 휘어진 남자의 입가에는 이제 과자부스러기와 함께 하얀 우유거품도 남은 채였다.

“저긴 왜 서있던 거예요?”

어느정도 배도 채웠겠다 이제 질문의 시간이었다. 아카아시는 제일 먼저 제 집 창 밖에 서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남자는 아카아시의 질문에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당신 보고싶어서.”

남자는 의미모를 대답을 뱉어놓고는 씩 하니 웃어보였다. 장난끼 가득한 개구진 웃음에 질문을 던진 아카아시 쪽이 되려 머릿속이 멍해졌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했건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에 어디서부터 꼬투리를 잡아야 할지 감도 잘 잡히지 않았다. 저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남자가 자연스레 반말로 이야기했다는 사소한 문제 정도는 신경 쓸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날 알아요?”

“응. 저기서 맨날 봤어.”

남자는 팔을 뻗어 아까 자신이 서 있던 창문 밖을 가리켰다. 아카아시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매일을 저 밖에서 기다렸다니 그럼 이 말도 안되는 차림새로 노숙이라도 했다는 말일까. 주변에 묵을 곳 하나 없고, 그나마 작은 민박이라도 찾으려면 차로 2~30분은 가야 하는 곳이었기에 아카아시의 생각은 자연스레 노숙으로 결론이 났다. 설령 주변에 제가 모르는 묵을 곳이 있다고 해도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차림새로는 들여보내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되려 신고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아카아시는 알 수 없는 죄악감을 느껴야 했다. 제가 마감을 위해 한달 전부터 커튼을 닫아놓았으니 길면 한달 동안을 이 남자 혼자 밖에 방치해두었다는 소리가 됐다. 아카아시가 잘못한 건 없었지만 왠지 나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폭하니 담요에 싸여 우유거품을 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어린 아이 같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계속 저기서 서 있었다는 말이예요? 언제부터..? 집이 여기서 가까워요?”

“어.. 집은 없고, 여기 온 건 오늘이 처음인데.”

“처음이면 그나마 다행..아니 집이 없어요?”

끄덕끄덕. 너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의 모습에 아카아시는 멀쩡하던 머리가 아파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그런 아카아시의 모습에 조금 기가 죽은 듯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부모님이나 형제는요?”

“..없는데.”

남자는 이번에도 별거 아니라는 듯 부정의 말을 입에 담았다. 아카아시만이 제 실수에 당황하여 얼굴을 찡그렸다.

“..생각이 짧았네요. 미안해요.”

둘 사이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카아시는 입을 꾹 다물고 최대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과는 그닥 좋지 않았다. 별로 아는 게 없으니 정리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저기..”

“..?”

아카아시가 의미없는 고민을 계속하는 동안 잠자코 눈치를 살피던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아카아시는 남자가 물어보고나서야 아직 제대로 된 통성명조차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자신이 너무 깊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첫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저 혼자 상황을 심각하게만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어딘가 불편하거나 힘든 기색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굳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들떠보이는 쪽이었다.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쿠로오. 쿠로오 테츠로. 편한대로 불러줘.”

남자 그러니까 쿠로오가 활짝 웃으며 대답하자 아카아시의 입에도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 사실 따지고보면 심각할 것도 없었다. 평범한 휴일 아침에 처음 보는 사람 한 명을 만났고, 바깥은 추우니 잠시 제 집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정도의 상황이었다.

물론 흘러가는 대화 내용이 조금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그러겠거니 하며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왠지 섣불리 이해를 하려고 하면 아카아시 자신만 손해일 것 같았다.

“나이는 어떻게 돼요? 꽤 어려보이는데.”

“나이..? 어.. 하나, 둘, 셋, 넷.. 스물 네 살.”

“스물 넷? 생각보다 나이가 많네요.”

쿠로오는 자그만 손가락으로 하나둘 숫자를 꼽아보더니 제 나이를 24살이라고 답했다. 의외였다. 아직 학생인줄 알았더니 꽤 나이가 있었다.

“아카아시는 몇 살이야?”

“서른입니다. 곧 완전히 30대 되겠네요.”

“나이 많구나..! 그럼 존댓말..”

“됐어요, 이제와서.”

“그럼 아카아시도 말 편하게 해.”

“그래.”

아카아시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쿠로오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엔 쿠로오쪽에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는데 주로 뭐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음식은 또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하는 시시콜콜한 잡담들이었다.

“쿠로오는 뭐 좋아해?”

아카아시가 쿠로오 입에 묻은 우유거품을 닦아주며 말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별다른 어색함이 없었다. 꼭 친한 동생과 이야기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풀어진 표정에 다정함이 흘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생선. 그 중에서도 꽁치가 제일 좋아. 또.. 아카아시도 좋은 것 같아.”

“쿡쿡. 오늘 처음 봤는데?”

“난 처음 아니야. 아카아시 저기 앉아 있었잖아.”

아카아시의 말에 쿠로오가 반색하며 말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 날 바닷가에서 달보고 있었잖아.”

“그걸 봤어..? 어디서?”

“바다에서. 아카아시는 나 못 봤지? 손 엄청 흔들었는데 안 쳐다봐줬어.”

쿠로오가 뾰루퉁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카아시가 자신을 못 봤다는 것이 꽤나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바다에서? 그 한밤중에 물에 들어가 있었어?”

“응.”

“왜 그랬어. 감기 걸리게. 다음부턴 그러지마.”

“응..?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그래. 지금이 여름도 아니고.. 아니, 여름이어도 한밤중에 바다는 위험하잖아.”

“..들어가지마..? 물에..?”

쿠로오가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심각한 고민에라도 찬 얼굴이었다.

“..바다.. 못 들어가면..”

“..쿠로오?”

“..나 그럼 어디서 자?”

 

 

3.

어디서 자냐니.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얘기가 왜 또 그쪽으로 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다에 들어가지 말랬더니 그럼 잘 곳이 없단다. 조금 순조롭게 이어지나 싶었더니 다시 핀트가 나갔다. 역시 아카아시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흐름이었다. 마치 쿠로오가 바다에서 라도 잠을 잔다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은가.

“잠은.. 집에서 자야지.”

“나는 집이 없는데..?”

“그럼 여태까지는 어디에서 잤어?”

“바다에서.”

“바다에서? 쿠로오.. 지금 물에 떠서 자기라도 했다는 얘기야?”

아카아시는 제가 물어보면서도 참 이상한 질문이다 싶었다. 멀쩡한 사람이 바다에 떠서 잠을 자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만약에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벌써 TV에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니. 들어가서 자야지. 그건 좀 추워서 싫어.”

“..집이 없다면서? 이 주변엔 민박도 없어.”

“민박이 뭔데? 나 그냥 바다에서 잔다니까?”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말이 앞뒤가 안맞는 모순투성이라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문제였다. 바다에서 잔다는 말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결국 아카아시는 더 이상의 생각을 거부하고 빠른 결론을 내렸다. 편하게 생각하기로 해놓고 또 고민에 빠져있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잘 곳이 없다고 하니 쿠로오만 좋으면 저희 집에 잠시 머물러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 일도 끝났겠다 무료한 휴식시간을 혼자서 보내지 않아도 되니 아카아시로서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청승맞게 음악이나 들으며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쿠로오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확실히 이상한 점 투성이였지만 그 나이대 답지않게 맑고 순수해보이는 모습은 꼭 이 세상의 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어린아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 기분이 묘했다.

“쿠로오.”

생각을 마친 아카아시는 나긋이 쿠로오의 이름을 불렀다.

“응?”

“이제 잘 데 없다고 했지?”

“응.. 아카아시가 들어가지 말라며..”

“그럼 여기서 잘래?”

“여기서? 아카아시랑 같이..?”

방금까지만 해도 시무룩해있더니 아카아시의 말을 듣자마자 쿠로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쿠로오는 나랑 같이 자고 싶어..?”

“응!”

쿠로오의 고개가 격하게 끄덕여졌다. 간절함을 담은 몸짓이었다.

“침대가 좁아.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그래. 그럼 같이 자자.”

잠시 고민하던 아카아시가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제 잠자리가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어쩌피 베개도 이불도 하나씩뿐이라 당분간은 같이 잘 수 밖에 없었다. 저렇게 활짝 웃고 얘기하는데 차마 싫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

“쿠로오.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옷?”

“그래. 그 분홍색 반팔티말고 따뜻한 걸로.”

아카아시는 역시 쿠로오의 차림새가 신경쓰였는지 옷을 갈아 입자고 했다. 촌스러운 걸 떠나서 저렇게 아무것도 안 입고 있다간 감기에 걸릴게 틀림없었다.

“속옷은.. 지금 새 것이 없으니까 나중에 사러가고, 일단 티셔츠랑 바지만 입고 있어. 위에서 갖다줄께.”

잠시후.

아카아시가 2층에서 내려오자 얌전히 소파위에 앉아 있어야할 쿠로오가 보이지 않았다. 그 잠깐사이 어디를 갔는지 막 소리내어 이름을 부르려던 차에 다행히도 한쪽 구석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카아시! 이거 엄청 부들부들해..!”

쿠로오는 신기한 듯 새로 입고 있는 옷을 연신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분홍색 티셔츠는 이미 저쪽 바닥에 내팽겨쳐둔지 오래였다.

“쿠로오, 그건..”

“이거 나 주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그건..”

“..아니야?”

감출 수 없는 실망감에 쿠로오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쳐졌다. 처연하기까지한 모습에 결국 아카아시는 긍정의 말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맞아.”

아카아시의 손에 들린 옷가지는 어쩔 수 없이 갈 곳을 잃었다. 고작 허여멀건한 샤워가운에 지다니 겨울의 필수템이라 불리우는 후드티의 수치였다.



 _continued




꽁치빌라 건물주 twitter: @rin_kkong 에스크&리퀘: asked.kr/krn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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