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인어가 좋아하는 꽁치를 못 먹게 된 이유에 관하여_1부

※연령반전/인어au




첫 만남

 

 

 

 0.

 조용하고 한적한 일본의 어느 시골마을. 바닷바람에 짠내음이 실려오고, 찌르르 벌레소리 들려오는 지극히 평화로운 곳. 바로 아카아시가 케이지가 3년째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곳이었다.

 아카아시는 장르소설 작가로 국내에서 나름 두터운 마니아층을 갖고 있었는데, 여러 매력요소 중에서도 그만의 정갈하고 담백한 문체가 가장 큰 포인트였다. 사실 그의 얼굴도 공개만 되었더라면 인기에 높은 기여도를 올렸을 테지만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 아카아시 역시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물론 그간 요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약간의 곱슬기있는 까만 머리카락과 자칫 나른해 보이지만 금욕적이고 섹시한 눈매. 이제 막 삼십대에 들어선 아카아시는 나이에 맞는 농익음까지 더해져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차분한 세련미를 자아냈다. 182센티미터의 우월한 신체조건과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성격 역시 그의 완벽함을 완성시켜주는 수많은 부분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아카아시에게도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몇 년째 앓고 있는 불면증이 그것이었다. 물론 불면증이라는 병이 그의 흠이 될 수는 없었지만 요즘 아카아시가 가장 괴로워하고 있는 부분임은 확실했다. 3년 전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에 생긴 불면증은 상당히 악질적이어서 여태 낫지 않고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병원에 다시 찾을 때마다 독한 수면제 양만 늘려오는 게 고작이었다. 이미 내성이 생겨버린 몸은 웬만큼 수면제를 먹어도 잠은커녕 졸린 기분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잠이 들어도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한 머리는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고, 최근 한 달은 한계치까지 약을 먹어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달 마감기간과 겹쳐 계속 무리를 한 덕분이었다. 



 1.

 차갑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한 밤바다의 찬 공기가 아카아시의 성긴 가디건 사이를 파고들었다. 얇은 잠옷에 가디건 하나만 걸치고 나오려니 초겨울의 추위를 너무 만만히 생각했나 싶었다. 아카아시는 아무도 없는 해안가를 걸었다. 위로는 은은한 달빛이 비치고, 한편에서는 간간이 철썩이는 파도소리도 났다. 조용하고 깜깜한 밤이었다. 

 아카아시가 이렇게 산책을 나오게 된 이유는 간단히 잠이 오지 않아서였다. 역시 약은 먹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정신이 멀쩡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순순히 잠이오지 않을게 뻔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야밤에 산책을 나온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정처 없이 걷다보니 꽤나 후미진 곳까지 와 버린 아카아시였다. 원래 밖을 잘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기도 했지만 상당히 외진 곳이었기에 더욱이 와볼 기회가 없었다. 곧 모래로 된 해변이 끝나고 꺾어지는 지점에 들어섰다. 수직에 가깝게 깎아지른 절벽과 작은 동굴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카아시는 망설임 없이 동굴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귀신, 유령등을 믿지 않는 아카아시였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동굴 내부는 작아 보이는 입구와 달리 꽤나 넓었다.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고여 있고, 전체적으로 습기가 차 있긴 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밖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카아시는 깜깜한 시야를 밝히기 위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부를 비췄다.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것은 없었다. 평범했다. 아카아시는 불빛을 여기저기 비춰보더니 금세 흥미를 잃고 몸을 돌렸다. 딱히 기대를 가지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 조금 김이 빠졌다. 

 딱. 동굴을 나서려고 한 발자국을 뗀 순간 갑자기 작은 돌멩이 굴러가는 소리가 등뒤를 울렸다. 주변이 조용한 탓인지 소리는 유독 더 크게 들렸다. 깜깜해서 아카아시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돌멩이는 딱딱한 바닥과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위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던져진 것이었다. 아카아시는 뒤를 돌아 안쪽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아까는 아무생각없이 지나쳤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가장 안쪽 끝이었다. 가장 끝쪽을 자세히보니 이질적인 검은 실루엣 하나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핸드폰의 불빛이 그리 멀리까지는 닿지 않았기에 길쭉한 통나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카아시는 정체를 확인하기위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 이끼가 껴있어 지나는 길이 미끄러웠다.

 잠시 후 아카아시가 확인한 검은 실루엣의 정체는 바로 사람이었다. 왠 남자 한 명이 엎어져 있었는데 뭐하나 걸친 것 없는 전라라 더 당황스러웠다. 이런 시골 외딴 곳에 남자가 쓰러져있을 이유는 무엇이며, 또 아무것도 안 입고 있을 이유는 무엇인지 아카아시는 통나무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자 더 혼란에 빠졌다. 분명 평범하기만 했던 동굴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런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조금 실망하는 쪽이 몇 배는 더 나았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흔들흔들. 아카아시는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귀찮긴 했지만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골치가 아팠다. 

 "저기요."

 "...."

 몇 번을 더 흔들어봐도 쓰러져있는 남자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아카아시는 하는 수 없이 남자의 몸을 뒤집어 상태를 살폈다. 심장은 제대로 뛰고 있고, 숨소리가 조금 약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다만 땀인지 물인지 온 몸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는데 이마에 손을 짚어보니 열이 나는 듯했다. 아무래도 잠시 기절한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작게 한숨 한 번을 내쉬고 남자를 조심스레 안아 올렸다. 아픈 사람을 이대로 둘 수는 없었으니 일단은 집으로 데려가야했다. 아무리 동굴 안이라지만 추운건 매한가지 였다.

 남자는 큰 키와 달리 몸은 말라 있어서 오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1층 침실에 남자를 뉘여두고 닦을 것을 가져와 흙으로 더러워진 곳들을 닦아내렸다. 맨몸으로 땅바닥에 누워있었으니 더러워지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확실히 열이 오르긴 한 모양인지 수건이 지나는 길마다 무의식중에도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카아시의 손길이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잠시후 어느정도 몸이 깨끗해지자 아카아시는 이불을 덮어주고 새 물수건까지 가져와 남자의 이마위에 얹어주고 나서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까는 잘 못봤지만 지금 자세히보니 얼굴이 꽤 앳된 게 많아야 스물 다섯살 정도일까 이제 막 어린티를 벗어가는 도중인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뽀얀 피부에 하얀 솜털이보송보송해 보였다. 감긴 눈 위로 보이는 빳빳한 속눈썹도 나름 귀여운 매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예쁘게 생겼다. 아카아시의 취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 머리칼은 누구든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더할나위없이 매력적이었다. 눈을 뜨고 난 모습이 더욱 궁금해졌다.


 ***


 이튿날 아침. 꼬박 하루를 더 잠에 빠져있던 남자는 다행히 건강한 모습으로 정신을 차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름.”

 “쿠로오 테츠로.”

 “나이.”

 “그런거 안 세는데..”

 “나이.”

 “..스물...?"

 "집은?"

 "없는데.."

 남자의 이름은 쿠로오 테츠로라고 했다. 아카아시는 쿠로오에게 이것저것을 따져 물었는데 나오는 대답들이 하나같이 문제있는 발언뿐이었다.

 "집이 없어요?"

 "..(끄덕끄덕)"

 "부모님은?"

 "없어.."

 "다른 가족이나 보호자도 없어요?"

 "나 혼자인데.."

 쿠로오는 아카아시 특유의 카리스마에 눌려 열심히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힐끗힐끗 돌아가는 눈동자가 움직이기 바빴다. 물론 아카아시는 의도한게 아니었다. 단지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원래 있던 곳은?"

 "바다..?"

 "하아..."

 "(움찔)"

 아카아시와 쿠로오는 침실에서 별소득없는 질의응답을 몇 번 더하고 나서야 질문을 그만두었다. 기억상실도 아니고 이 이상 물어봤자 더 나올게 없었다. 아카아시는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생각에 잠겼다. 돌아갈 곳도 없고, 부모님도 보호자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해도 찾을 것이 있어야 찾는 것이지 이래서야 가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니, 혈혈단신으로 바닷가 동굴안에 쓰러져있었다고 하면 믿어주기나 할까? 어쩌면 제가 더 수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지도 몰랐다.

 "저기.."

 "?"

 "나 쫓아낼 거야...?"

 흠칫. 쿠로오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아카아시도 선뜻 대답해주기가 힘들었다. 다 큰 성인을 고아원에 맡길 수도 없는 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아카아시의 머릿속을 오고 갔다.

 "..여기 있고 싶어요?"

 "...(끄덕끄덕)"

 "나랑  있어도 괜찮겠어?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 물론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좀 더 신중히 생각해야.."

 "괜찮아!"

 "응?"

 "괜찮아."

 쿠로오가 환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뭘 알고나 괜찮다고 하는건지 그 해맑은 웃음에 아카아시도 피식 웃고 말았다. 방금까지 고민했던 게 전부 쓸데없는 일이 된 기분이었다. 

 

 

 

 







린꽁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